안핑은 타이난 인근 해안입니다. 네덜란드 시기부터 시작해 정씨 왕조 시기를 거쳐 청 도광 2년까지 약 200년간 안핑은 타이완 섬과 연결되지 않은 작은 섬이었습니다. 안핑과 타이난 해안 사이의 해면은 태강만(台江灣)으로 불렸는데, 고대의 대형 선박이 드나들 수 있었고 수심은 약 5~6m였습니다. 안핑은 연이어지는 사주 중 하나였습니다. 원래 이름은 1곤신(鯤鯓)으로 남쪽으로는 현재 이인(二仁) 하구 부근까지 이어졌습니다. 이밖에 사주가 여섯 개 있었는데, 일곱 개 사주는 각각 1곤신부터 7곤신으로 불렸습니다. 안핑은 북쪽으로는 수로를 사이에 두고 있었습니다. 북선미 사주와 서로 마주 보고 있으며 이 수로는 태강만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길목이었습니다. 네덜란드인들은 이곳에 질란디아(안핑 고성)을 세워 요충지를 지켰습니다. 북선미의 북쪽은 루얼먼을 사이에 두고 사주와 서로 마주 보고 있었습니다. 이 또한 태강만에 들어가는 중요한 입구였습니다.
구 안핑 항구 해안은 사질 형성지였습니다. 폭우에 빗물이 토사와 함께 상류에서 아래로 내려왔고, 타이완 해협의 풍랑의 영향으로 가늘고 긴 사주를 이루었습니다. 현재 해사 학교에서 2km 떨어진 해안 밖에서 해안을 이루었고, 남쪽으로는 타이난시 샤쿤선 (下鯤鯓)까지, 북쪽으로는 신펑군(新豐郡) 안순장(安順庄)(현 안난구[安南區])까지 이어져 있었습니다. 항만을 이루었지만 사계절 풍랑, 홍수 등 이상 변화로 두 곳의 수로 공급지(옛 안핑 항구)는 물을 사이에 두고 약 400km 떨어져 있었습니다. 항구는 전부 얕은 사주였고 파도가 자주 일어났습니다. 그 사이에 수로가 있지만 썰물 때 가장 얕은 곳은 약 1m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때때로 변화가 일어났고 풍랑이 오면서 수로의 위치는 완전히 변하게 됩니다. 구 항구는 동쪽으로 타이난시 구 운하까지 통했으나 토사의 침적으로 만조 때 작은 배도 지나가기 어려워지더니 결국 타이난시 배수 도랑이 되었습니다. 구 운하의 요충지인 염수강 하류부터 항구 사이에서는 홍수로 인해 유사가 침적하면서 뱃길이 막혔고, 운하의 가치가 대폭 떨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항구 개량이 시작됐습니다. 쇼와 6년(1931년) 옛 항구 남쪽 1km 지점에서 곤신 반도를 절단한 다음 새로운 운하와 연결해 새로운 안핑 항구를 열었습니다. 쇼와 10년 10월 착수한 공사는 2년 5개월 거쳐 쇼와 13년 3월에 완공됐습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구 항구보다 수심이 깊어졌습니다. 썰물 때 수심은 3m가 되었고 새로운 항구의 크기는 100m가 되었습니다. 타이난, 펑후(澎湖) 사이를 항해하는 화물과 여객 기범선 및 선박들도 썰물 때에 자유롭게 입출항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항구 남북 해안에는 해안 보호를 위한 수로를 세웠습니다. 해안 끝단에는 160m 길이의 도류제 2개를 놓았으며 남북 도류제의 앞단에는 표지등을 설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