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징 구

화이트 교회(白色教堂)

흰색 교회, 화이스 위산 식당 및 푸딩 공방이 결합된 다기능 레저 장소이며,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은 당연히 흰색 교회입니다. 외관과 내부 배치를 모두 흰색을 기본 색상으로 사용하였으며 교회 주변의 풍차, 나무 해먹, 흰색 목마, 정자가 색다른 정취를 선사합니다.

갈릴리 표류목 방주 교회(加利利漂流木方舟教堂)

갈릴리 선교 센터의 방주 교회는 88 재난의 표류목으로 세운 곳이며, 그 모양이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초원에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 배경 같은 예수님과 양떼, 그리고 귀여운 동물 조각상이 있고, 표류목 높은 담장 뒷면이 바로 교회입니다. 산비탈로 향하는 길은 성경 속 이야기의 길처럼 작고 조용한 기도실로 쭉 이어져 있습니다. 푸른 나무로 둘러싸인 호수는 저녁 노을을 감상하기에 좋은 곳입니다.

타파니 사건 기념공원(噍吧哖事件紀念園區)

1915년 일본이 대만을 식민지로 통치한지 20년째 접어들었을 때, 정의롭지 않은 체제 하에 원한이 날로 쌓아가면서 같은 해 여름 타파니 지역에서 대규모의 무장 항일 사건이 발발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이 사건을 타파니 사건 또는 시라이안(西來庵)사건이라고도 부릅니다. 2015년 타파니 사건 100주년을 맞아 타이난 시정부 문화국은 위징 제당 공장 접대소(玉井糖廠招待所) 등 오래된 목조 건물들을 보수해 ‘타파니 사건 기념공원’으로 조성했습니다. 공원 내 전시관에는 사건 당시의 많은 사진과 당시 사용했던 무기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공원 옆에 있는 기존 매점은 ‘아름다운 타파니-물산관 및 여행 안내 센터’가 되었고 유명한 특산품 상점들이 많이 입점해 있어 여행객들이 관람 외에도 현지의 맛을 느껴볼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위징 후터우산(玉井虎頭山)

후터우산은 위징 주웨이리(竹圍里) 경계에 위치해 있으며 산세가 호랑이 머리와 닮았다하여 이름 붙여졌습니다. 높이는 해발 239미터 입니다.
위징 지역에서 매우 유명한 경치 좋은 커피 명승지로 산 정상의 카페들은 휴일이 되면 자리가 없을 정도입니다. 카페마다 각각의 특색이 있고 전망도 각각 다르지만 어디서든 낮에는 산 속 작은 마을의 경치를, 밤에는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어서 많은 젊은이들에게 사랑받는 로맨틱한 데이트 장소가 되었습니다.
산 정상에 세워진‘항일 열사 위칭팡 기념비’는 이곳에서 항일 운동에 목숨을 바친 위칭팡(余清芳) 열사를 기리고 있습니다.

위칭팡 항일 기념비(余清芳抗日紀念碑)

위칭팡 열사가 이끌었던 타파니 항일 사건(噍吧哖抗日事件) 기념비로 위징 후터우산(玉井虎頭山)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1915년 타파니 사건이 발발했을 당시 후터우산은 항일기지이자 쌍방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였으며, 당시 사건에 개입돼 학살된 사람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오늘날 비장하고 장렬했던 역사 사건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희미해졌고, 용감하게 희생된 열사들의 사적을 기재한 기념비만 후터우산에 남아있습니다. 이외에도 후터우산은 위징을 방문한 많은 여행객들이 찾아오는 전망 명소입니다. 망고 산지로 유명한 더우류짜이산(斗六仔山)과 마주보고 있으며, 높은 곳에서 위징 시내 경관을 바라볼 수 있고, 야간에도 산간 도시의 야경을 볼 수 있습니다. 기념비 주변에는 카페가 많고 카페마다 각기 다른 전망과 음식을 자랑해 로맨틱한 데이트 및 경치 감상에 좋은 장소입니다.

북극전(北極殿)

위징(玉井) 북극전은 1717년에 건립되었습니다. 당시 현천상제(玄天上帝)가 꿈에 나타나 경고를 해 위징 지역 주민들이 홍수를 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자금을 모아 사당을 짓게 되었습니다.
현천상제는 거북이와 뱀을 발로 밟는 모습을 하고 있어서 사당 정원에 들어서면 많은 신도들이 바친 거북이를 볼 수 있는데, 가장 많을때는 수백마리에 이른 적도 있습니다. 북극전은 위징 분지에 위치해 있으며 사당 설립 이래로 전설이 끊이지 않아 신이 주민들을 보우했던 일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2차 세계대전 때 일입니다. 연합군 전투기가 위징 초등학교를 향해 사격을 가했는데, 어떤 이가 꿈에서 현천상제가 피난하라 경고하는 것을 보아 전교 3천여명의 선생님과 학생들이 전부 흩어져 피난해 사상자가 한명도 없었습니다. 또한 1964년 바이허(白河) 대지진 때에는 건물이 무수히 무너졌으나 놀랍게도 사상자 수가 매우 적었습니다. 이는 모두 현천상제의 자비로운 경고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전설에 많은 이들이 감탄하고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북극전은 많은 위징 사람들의 정신적 의지처와 신앙의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