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史古蹟

신화 옛거리(新化老街)

신화는 일본 통치 시기부터 타이난 산간 지역 입구의 중요한 정치 경제의 중심지였습니다. 당시 상인들이 몰려들어 번화했으며 일본인, 한인(漢人)과 핑푸족(平埔族)간에 왕래했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많은 서양식 건물, 거리 가옥이 건축되어 번창한 상점 거리가 형성되었고 활발한 거래가 이루어졌습니다. 오늘날의 신화 옛거리는 오래된 서양식 건물부터 바로크 양식을 모방한 파사드 건축물, 정교한 꽃무늬와 조각 장식까지 보존하고 있어, 이 곳의 많은 상점들이 몇십년의 역사를 가진 오래된 가게들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상점에 들어가면 어렸을 적 잡화점을 드나들던 추억이 떠오르고, 가게들이 물건을 사라고 외치는 모습들이 마치 당시의 영광을 재현한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융캉 산칸뎬 설탕 공장 신사 유적(永康三崁店糖廠神社遺蹟)

일본 통치 시기 일본인들이 산칸뎬 설탕공장에 신사를 세워 요시히사 친왕, 천조대신, 풍수대신을 모셨습니다. 신사는 일본인의 신앙중심으로 당시 타이난에는 많은 신사가 있었지만 시내 근처에 있는 신사들은 대부분 훼손되거나 개축 후 사라졌습니다. 신사의 부지는 대체로 조용하고 수풀이 무성한 곳을 선택합니다. 산칸뎬 신사는 가장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는데 비교적 시내에서 떨어져 있고 은밀하며 설탕 공장 안에 위치해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신사의 목조 구조는 사라졌지만 본전, 도리이(신사 입구 문), 테미즈야(손 씻는 곳), 석등, 참도(참배 길), 사무소 등 신사 건축 시설의 기틀은 온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 곳에 들어오면 마치 은밀한 숲 속 신사 유적 안에 들어온 것 같습니다. 녹음이 가득한 숲은 풍부한 생태 환경을 보호해주고 비 온 뒤 바닥에 고인 물에 유적 전체가 거꾸로 비치면서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몽환적 느낌이 들게 합니다. 평소 생태 촬영을 좋아하는 여행객들도 자주 신사에 와 이러한 비경 속에 서식하고 있는 희귀한 개구리(諸羅樹蛙)를 찾기도 합니다.

시서 서룡 전(西社西㡣殿)

시서 서룡전은 지부천세(池府千歲)를 모시며 안핑 왕청 시서(安平王城西社)의 주민들을 보우합니다. 출항시 평안을 빌거나, 각종 법사 모두 서룡전에서 이뤄집니다. 사당 내에는 모시는 신들이 많은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대전 내 좌우에 있는 거대한 사부(謝府)와 황부원수(黃府元帥)입니다. 그 중 가장 특별한 것은 대전 내 토지공(土地公) 형상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모습과 다르다는 것인데, 과피모(瓜皮帽)를 쓰고 마고자를 입고 있을 뿐 아니라 커다란 담뱃대까지 들고 있습니다. 현지의 선량한 유지인 왕지스(王雞屎)의 모습으로 만들어졌다고 전해지며, 손에 담뱃대를 들고 있기 때문에 신도들이 자주 담배로 제를 올리고 있어 관람의 중요 포인트가 되고 있습니다. 2층 칭윈사(清雲寺) 뒤쪽으로는 매우 좁은 냐오항산(鳥行山) 안러둥(安樂洞) 구멍이 있습니다. 이 구멍을 지나가면 평안할 수 있다고 하니 구멍에 끼이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시도해 보시기 바랍니다.

왕지스 양옥집(王雞屎洋宅)

왕지스 양옥집은 아름다운 옛집으로 1937년 건축된 당시 안핑(安平)에서 가장 호화로운 저택이었습니다. 이러한 명칭으로 불리는 것은 집주인의 이름이 왕지스이기 때문입니다. 왕지스씨는 일본 통치 시기 일본 염업 회사의 운송 작업을 수주해 부를 얻게 된 뒤 이 양옥집을 지어 거주했습니다. 2층짜리 건축물은 당시 안핑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습니다. 양옥집 옆에는 특이한 돌의자가 있는데, 이는 옛날 물살이 거센 검은 물길(黑水溝, 현 대만해협)을 왕래하던 선박의 밸러스트였습니다. 안핑에서는 이러한 밸러스트를 자주 볼 수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이를 돌계단, 발판으로 이용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정원에 놔두고 관광객들이 돌아다니다 지치면 그 위에서 잠시 쉴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왕지스 양옥집에는 아직도 왕씨의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으니 방문하실 때 왕씨 후손들의 거주 환경에 폐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이자이 금성(얼쿤선 포대)〔億載金城 (二鯤鯓砲台)〕

‘얼쿤선 포대’라고도 불리는 이자이 금성은 사각형 모양으로 사방에 보루가 있으며 해자로 둘러 싸인 붉은색 성입니다. 중앙의 잔디밭은 당시 사병 훈련 소재지로 지도상으로 보면 매우 균형잡힌 마름모꼴 디자인입니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이자이 금성은 군사 거점으로의 역할을 상실하고 매우 인기있는 관광지로 변모했습니다.  3-4월에는 주변에 황금 트럼펫 나무 꽃이 만개해 더욱 아름답습니다.

안핑 고성(安平古堡)

17세기 초 네덜란드인들은 군과 상이 결합해 1624년 오늘날의 안핑을 점령하고 질란디아 요새(熱蘭遮城)를 그 방어 요새로 건설했으며 1634년에 완공하였습니다. 1662년 정성공(鄭成功)이 네덜란드 성을 차지한 뒤 안핑전(安平鎮)으로 이름을 바꾸고 내성(內城)은 내부(內府)로 바꾸면서 대만인들이 이곳을 왕성(王城)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청나라 점령 시기 타이장(台江)이 침적으로 육지화되면서 그 중요성이 사라지고, 청나라 병사들이 질란디아 요새를 파괴하고 억재금성(億載金城)을 지으면서 점차 황폐해졌습니다. 일본 통치 시기 후 재건되었고 2차 세계대전 후 ‘안핑 고성’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현재 네덜란드 시기부터 남아있는 유적으로는 성 앞쪽 외성 남쪽 성벽의 벽돌벽이 있으며, 얽혀있는 반얀나무가 세상의 풍파를 겪으며 400여년 타이장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1975년 관광의 해를 맞아 타이난 시정부는 안핑 고성 지역 환경을 보수했습니다. 전망대에 첨탑형 지붕을 추가하고 벽에 흰색을 칠해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안핑 고성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안핑 소 포대(安平小砲臺)

청나라 도광(道光) 20년인 1840년 아편전쟁 기간에 건립되었으며 당시 대만 청나라 군사가 영국군을 막아내기 위해 건설한 해안 방어 조치 중 하나였습니다. 포대는 본체와 성을 보호하는 돌제방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돌제방은 좁고 긴 모양을 하고 남북으로 뻗어있으며 포대 본체는 연못공원(水池公園) 옆에 있습니다. 제방은 화강암으로 쌓았으며 북측 제방은 산호석과 삼합토로 건축되었습니다. 포안을 남겨두었으며 물을 막아주는 수문도 설치되어 있습니다. 직할시 고적으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대만에서 가장 완벽히 보존된 청나라 초기의 중국식 포대로 억재금성(億載金城)의 서양식 근대 포대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곳은 원래 안핑 해안의 중요 해안 방어 시설이었으나 후에 타이장(台江) 내해가 퇴적으로 인해 사라지면서 그 기능을 잃게 되었습니다. 옛날 위풍당당했던 포대는 이곳에서 상전벽해의 변화를 목도하고 있으며, 여행객들이 과거를 회상하는 좋은 장소가 되었습니다.

안핑 루징탕 가옥(安平盧經堂厝)

루징탕 가옥은 청나라 시기 안핑의 부호 루징탕의 저택으로 시 고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보수 상태가 완벽하며 내부에서는 고대 복장을 입어보며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고대 복장을 입은 뒤 고풍스러운 고택에서 사진을 찍으면 마치 시간이 거꾸로 흐른 것 같아 많은 여행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또한 전통 돌잡이도 체험해 볼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다가가기 어려웠던 최고 부잣집이 지금은 여행객들과 시민들이 안핑을 탐방하는 좋은 장소가 되었습니다.

운하 박물관(구 타이난 운하 안핑 해관)[運河博物館(原台南運河安平海關)]

1926년 완공한 안핑 해관은 일찍이 상선이 안핑을 드나들며 정박하고 관세를 내던 곳입니다. 오늘날 안핑에 들어서면 운하 옆 큰 나무 아래에 있는 붉은 벽돌로 된 아름다운 일본식 건축물이 인상 깊게 남을 것입니다. 이곳은 2003년 정식으로 시정 고적이 되었습니다. 주변 장식과 운하 경치가 결합된 예술 장치와 현대 예술 및 고적을 융합한 경관으로 수많은 젊은 여행객들이 꼭 방문해 인스타그램에 위치를 체크인하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또한 많은 예술 전시가 열리는 전시 장소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내부에는 안핑 운하의 옛 사진들과 영상이 많이 전시되어 있으며 당시 사용했던 다수의 설비들도 보존되고 있어 마치 소형 역사관 및 미술관 같은 느낌을 줍니다.


안핑 굴껍질 분말 가마 문화관(安平蚵灰窯文化館)

굴껍질 분말 가마는 옛 안핑지역의 매우 중요한 건축 재료 제조장이었으며 국내 현존하는 유일한 굴껍질 분말 가마이기도 합니다. 17세기부터 굴껍질 분말은 바다를 생활의 터전으로 삼는 안핑 사람들에게 필수적인 조선 재료 중 하나였습니다. 후에는 여기에 설탕물, 찹쌀물을 추가해 집을 지을 때 벽돌과 기와 접착에 사용했습니다. 굴껍질 분말 가마로 들어가면 아이위즈(愛玉子) 덩굴로 뒤덮인 붉은 벽돌담이 보이는데, 그 내부는 도기를 굽던 매우 큰 구덩이입니다. 내부 직경은 약 4m, 높이는 약 2m이며 가장 얇은 벽면 두께가 1m나 되는 보기 드문 가마터 건축물입니다.
문화관 구역 내부에서는 굴의 성장 과정과 생태, 굴껍질 분말 제작 과정, 굴껍질 분말의 응용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어 옛 기술에 대해 자세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