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史古蹟

중다오충원 패방(重道崇文坊)

타이난 공원을 걷다보면 역사가 오래된 돌 패방(牌坊)을 볼 수 있는데 위쪽에는 ‘중다오충원(重道崇文)’이라 쓰여있습니다. 이는 1815년에 지은 것으로, 이로써 부성의 린차오잉(林朝英)이라는 인물이 선행을 베풀어 대만 현학 문묘(台灣縣學文廟)를 지은 것을 표창하고자 하였습니다.
돌 패방은 원래 룽왕먀오(龍王廟) 사당 앞, 즉 난먼로(南門路) 구 타이난 경찰서 일대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일본 통치 시기인 1934년 현재의 난먼로를 개발하면서 룽왕먀오는 허물게 되었고, 돌 패방은 타이난 공원 옌탄(燕潭) 옆으로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타이난 공원에서 매우 중요한 문물입니다.

싼산궈왕먀오(三山國王廟)

싼산궈왕(삼산국왕)은 광웨(廣粵) 지역의 민간 신앙에서 비롯되었습니다. 1742년 건립된 타이난 싼산궈왕 사당은 대만에서 유일한 정통 광동식 건축물로, 삼산의 신인 건산국왕(巾山國王), 명산국왕(明山國王), 독산국왕(獨山國王)을 모시고 있습니다. 삼산국왕 외에도 한문공(韓文公)과 천상성모(天上聖母)도 모시고 있습니다. 입구에 오면 일반적인 사당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다른 사당처럼 화려하지 않으며 벽면의 채색화에는 튀지 않고 소박하며 우아한 색깔을 사용했습니다. 배전(拜殿)의 용과 호랑이 부조는 매우 정교하여 그냥 지나쳐선 안될 관람 포인트입니다. 사당 내에는 역사가 오래된 편액들이 많이 있습니다. 정전에는 건륭황제(乾隆皇帝)가 하사한 ‘포충(褒忠)’이 있고, 한문공 사당 내에는 광서황제(光緒皇帝)가 하사한 편액이 있습니다. 정전 뒤쪽에는 4개의 곁채가 있는데 그중 한 곳에서는 삼산국왕 부인을 모시고 있습니다. 사당 전체에서 차오산(潮汕)의 짙은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민남식과는 다른 사당 건축물을 보고싶다면 삼산국왕 사당이야말로 놓쳐서는 안될 역사 고적입니다.

우구이징(烏鬼井)

쯔창가(自強街) 골목에 ‘우구이징’이라 불리는 고적이 하나 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이 우물은 수원이 왕성하여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1653년 굴착 후 지금까지도 물이 있는 상태이며, 당시에는 왕래하는 선박들과 현지인들의 음용수로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이곳에 온 동인도 회사의 네덜란드인이 흑인 노예를 데리고 와 우물을 팠다고 합니다. 당시 대만 사람들은 피부가 검은 흑인을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우구이(烏鬼, 검은 귀신)이라 불렀다고 하며 이 우물의 명칭도 이로부터 유래되었습니다. 후에 일본 통치 시기에 이르러 점차 우물물을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 불의의 추락사고도 자주 발생하자 일본인들이 우물 입구를 막고 덮어버렸습니다. 그 후 1955년에 이르러 고고(考古) 작업을 통해 복구되었습니다.
타이난 시내의 우구이징, 융캉(永康)의 우구이교(烏鬼橋), 신화(新化)의 우구이춰(烏鬼厝) 모두 흑인 노예를 수감하고 매장했던 장소라는 말이 있습니다. 비록 타이난에는 당시 흑인 노예에 관해 기재된 사실이 많지 않지만, 이로부터 당시 흑인 노예의 활동 지역과 부성이 국제 해상 무역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수이자오서 문화 단지(水交社文化園區)

군인 마을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수이자오서 문화 단지는 2019년 말에 문을 열었습니다. 시멘트를 쌓아 올린 기와 가옥과 격자무늬 나무 창문, 기와 처마를 가파르게 내려오는 파이프가 보이고 가옥 주변에는 파인 도랑과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밭이 있습니다. 단지 내에는 이뿐만 아니라 다른 생태계도 존재합니다. 푸른 잎이 수려한 연꽃을 받치고 고목의 뿌리가 담장을 휘감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담소를 나누며 한가로이 산책을 합니다. 단지 내 있는 F-5E 전투기 덕분에 '비행기 군인 마을'이라는 별칭이 생겼습니다.

 

오래 보존된 공군 역사

구 타이난 주립 농사 실험장 기숙사 및 사무실(原臺南州立農事試驗場宿舍群及辦公廳舍)

교통이 복잡한 둥먼로(東門路)와 창룽로(長榮路) 교차로 주유소 맞은편 골목 안에 일본식 옛집이 몇 채 흩어져 있는데 이들이 바로 구 타이난 주립 농사 실험장 기숙사 건물입니다. 일본 통치 시기 이 일대에 농업 관련 부문을 설립하여 이 곳에서 농업 연구와 실험을 시행했으며 사무실, 농예실험실, 병리 곤충 연구실, 비닐하우스 등을 지었습니다. 일본식 옛집은 보수를 거친 뒤 현재는 외부 위탁 경영으로 예술 문화 전시 공간 및 요식업 서비스를 제공하는 특색 점포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나량우(구 타이난 주립 농사 실험장 숙사[納涼屋(原臺南州立農事試驗場宿舍群)]-정종 관사(丁種官舍)

구 타이난 주립 농사 실험장 숙사는 대략 1923년에 건립된 곳으로 현재는 타이난 동구(東區)의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으며, 나량우라 불리기도 합니다. 단지 안은 일본식 분위기가 느껴져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유카타 체험을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도 체험을 하고 간단한 스낵류와 음료도 맛볼 수 있습니다. 휴일에는 각종 가족 이벤트도 많으며 인터넷 스타들도 모여드는 엄연한 핫플레이스입니다. 또한 근처에 위치한 환경 보호국에서 운영하는 중고 재활용 가구점인 창진거(藏金閣)에서는 중고 가구 경매 행사도 진행하고 있으며, 인근에 다둥 야시장(大東夜市)이 있어 더욱 시끌벅적합니다.

구 타이난현 지사 관저(原臺南縣知事官邸)

구 타이난현 지사 관저는 1900년 설립되었으며 타이난 사람들은 이 건물을 ‘시계탑’이라 부릅니다. 원래 지붕 박공의 토템 무늬가 시계와 비슷하다고 하여 이러한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 건물은 현지사의 관저로 사용된 것 외에도 다른 일본 황족 외출시의 숙소(御泊所)로 이용됐습니다. 대만 역사상 이 건축물은 대만 남부지역에서 유일하게 황족이 거주하도록 설계된 임시 거처로 1941년에 이르기까지 약 20명의 일본 황족이 이곳에 머물렀습니다. 이는 총독 관저로 이용된 타이베이 빈관(台北賓館)보다 더 많은 숫자로 일본 통치 시기 이 건물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1923년 당시 히로히토 황태자(후의 쇼와 천황)가 타이난에 시찰을 나올 때 이곳에 묵은 적 있는데, 황태자의 방문을 위해 관저 좌측에 목조 사랑채를 세우고 우측에는 황태자가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두 곳의 테니스 코트를 만들었습니다. 테니스 코트는 이미 흔적 없이 사라졌지만 당시 황족 시찰을 얼마나 중시하고 조심스러워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구 타이난 청장 관저(原台南廳長官邸)

1898년부터 1906년에 걸쳐 지어진 이곳은 일본 통치 시기에는 타이난 청장 관사였다가 이후에 내무부 관장 숙사로, 2차 대전 후에는 정부 고관의 관저로 이용됐고 사복 경비원도 배치됐습니다. 이후 타이난 제일 고등학교 교직원 숙사로 이용되었다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황폐해졌습니다. 2017년 9월 수리를 마친 뒤 사용을 재개하였고 현재는 타이난 시장이 외빈을 응접하는 접대소가 되었습니다.
건축 형식은 메이지 시대 유행했던 일식과 서양식이 결합된 ‘화양2관(和洋二館)’ 양식입니다. 북쪽 건물은 서양식 건축의 양관(洋館)으로 보수 후 전체적인 상태가 좋아졌습니다. 내부 장식이 우아하며 내부 인테리어부터 가구는 고전적인 스타일을 갖추고 있습니다. 남쪽 건물은 일식 건축의 화관(和館)인데 오랫동안 수리를 하지 않아 지반과 바닥의 무늬 타일만 남아있습니다. 2017년 9월14일 보수를 마치고 처음으로 관람이 개방되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국립 성공대학교 박물관(國立成功大學博物館)

1933년 준공된 곳으로 전신은 총독부 타이난 고등공업학교의 행정센터였으며 지금은 국립 성공대학교 성공 캠퍼스 내 성대 박물관입니다. 대만에서 처음으로 대학이 자체 투자해 세운 박물관으로서 다쉐로(大學路)의 중요한 랜드마크입니다. 현재 약 2600여점의 소장품이 있으며 그 종류는 도기, 석기, 목기, 조각, 편직물 등으로 매우 다양합니다. 매년 정기적으로 각기 다른 테마 전시가 교체되고 있으며 본래 문화 및 교육적 숨결이 가득한 캠퍼스 주변에 예술적 정취를 한층 더해주고 있습니다.

선농가(神農街)

청나라 시대부터 타이난 5대 항구 지역의 중요한 하천 항구 입구였으며 당시 모든 상인들이 이 길로 타이난을 드나들었습니다. 당시 가장 번화했던 구역으로 백년의 변천을 겪으며 기존의 하천 항구는 현재 도시 속의 도로가 되었습니다.
낡고 오래되어 몰락한 거리가 최근 몇 년 사이 문화 창의 예술의 집산지로 변모한 곳으로 타이난 문예 청년들의 성지 중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거리 양쪽으로 들어선 가게에는 수제 디자인 스타일의 물건들이 가득합니다. 독창성을 유지하기 위해 대부분의 가게 내부에서는 사진 촬영을 하실 수 없으니 가게 규범에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거리의 모든 가게들이 자세히 살펴볼만한 가치가 있으니 거리만 한번 걷고 지나가지 마시고 가게마다 들어가서 구경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