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史古蹟

융청 극장(永成戲院) 

융청극장은 1945년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전신은 극장이 아니라 황즈(黃直) 선생이 운영하던 ‘융청 정미소’ 였습니다. 일본 통치 시기 황가네 정미소는 일본 정부와의 장기 협력으로 정경계에 인맥이 아주 넓었고 사업이 매우 번창했습니다. 2차 대전 발발 후 정미소도 그 영향을 받게 되었고 일본인이 대만에서 철수한 뒤 정미소는 큰 타격을 받아 과거의 좋았던 시절은 지나가버리게 되었습니다. 황즈 선생은 이를 극장으로 개건하였는데 이 것이 바로 융청 극장의 유래입니다.
극장으로 변신 후에는 옌수이 일대의 정경계 유명 인사의 모임 장소가 되었습니다. 영화 상영 외에 가끔 극단 초청 공연도 있었으며 그 당시 옌수이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극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대의 변천에 따라 융청 극장은 2000년에 문을 닫게 되었고 그 후 타이난 시정부가 이를 보수하게 되었습니다. 내부에는 당시 극장에서 사용하던 커튼, 히노키 나무 벤치 및 영사기를 보존해 두었고 명절 때는 옛날 영화를 상영하기도 합니다. 극장 밖에는 영화와 관련된 설치 예술도 있으니 옌수이에 오실 때 놓쳐서는 안 될 장소입니다.

옌수이 우먀오(鹽水武廟)

옌수이 우먀오 사당은 1715년에 건립되어 관성제군(關聖帝君. 관우)을 모시고 있습니다. 매년 원소절(정월대보름)에 옌수이 펑파오(蜂炮, 벌집 폭죽)를 개최하면 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아 대만에서 가장 광적인 축제에 참가합니다. 원소절 전날부터 매우 많은 사람들이 옌수이에 모여들고, 당일에는 더욱 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작은 마을은 성대한 제전에 참가하려는 여행객들의 열정으로 넘쳐 흐릅니다. 옌수이 펑파오는 전염병 제거와 역귀를 보내는 관성제군 순례 의식으로부터 비롯되어, 오늘날 대만 원소절의 가장 중요한 행사로 변천되었습니다. 신의 가마(神轎)가 우먀오에서 출발해 행진을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지나가는 곳마다 열기가 달아오르고, 만개의 벌집 폭죽이 일제히 터지기 시작하는 놀라운 광경에 스릴을 좋아하는 국내외 관광객들은 신이 납니다. 원소절 종일 옌수이는 불야성처럼 시끌벅적하며, 이는 일생에 꼭 한번 체험해봐야 할 축제입니다.

웨진 항(月津港)- 쥐보팅 다중먀오 (聚波亭大眾廟)

과거 옌수이(鹽水) 웨진항에는 상인들과 상선들이 즐비했으며 쥐보위훠(聚波漁火, 쥐보팅에서 바라본 고기잡이 등불)는 당시 웨진 팔경 중 하나였습니다. 쥐보팅 옆의 다중먀오 사당은 1741년 건립되어 레이푸 대장공(雷府大將公)을 모시고 있으며, 옌수이 후비궁(護庇宮) 얼마자오(二媽角) 지대에 속합니다. 사당 주변 환경은 아름답고 아늑하며, 사당 앞 큰 나무 아래는 많은 현지 주민들이 오후에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고 바람을 쐬는 좋은 장소입니다. 사당에서 가장 특별한 것은1990년 사당 관리인이 약 5,000개의 마작패로 만든 작은 사당으로 쥐보팅 다중먀오의 사당 속 사당이 되었습니다. 이 안에는 무재신(武財神)을 모시고 있어서 많은 신도들이 수험표 또는 명함을 작은 사당 안 또는 신상 손 위에 올려두며 시험운과 사업운을 빌어 다중먀오의 독특한 광경이 되었습니다.

팔각루(八角樓)

팔각루는 1847년 건립된 목조 대저택입니다. 당시 옌수이 웨진(鹽水月津) 항구는 여전히 상선들이 자주 왕래하고 거리에 상인들이 드나드는 번화한 곳이었습니다. 설탕 사업으로 부유해진 예(葉)씨 일가가 탕산(唐山)의 기술자를 대만으로 초청해 건축했으며, 건축 자재는 모두 중국에서 넘어온 푸저우 삼나무(福州杉)와 벽돌로 이루어진 당시의 호화 저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후에 을미전쟁 발발로 일본군 상륙 후 후시미노미야 사다나루 친왕이 팔각루를 투숙지 및 지휘소로 이용하면서, 정원 내에 ‘후시미노미야 친왕 유적 옌수이항 통괄 설영소(伏見宮貞愛親王御遺跡鹽水港御設營所)’라는 비석이 세워졌습니다. 2차 세계대전 시기에 이르러 도로 개정과 연합군 폭격으로 일부분이 허물어졌으며, 전쟁 후 예씨 일가에 반환되었습니다.

훠산 비윈사(火山碧雲寺)

1798년에 건립된 훠산 비윈사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외관상의 큰 변화가 없습니다. 이 고찰은 민난(閩南)과 일본식 스타일이 결합되어 있으며, 뒷쪽으로는 전터우(枕頭) 산맥이 배경이 되주어 전체적인 경관이 매우 고풍스럽고 운치 있습니다. 비윈사 앞쪽에는 전설로 가득한 추미둥(出米洞. 쌀이 나오는 구멍)이 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매일 이 구멍에서 절에서 딱 먹을 만큼의 적당량의 쌀이 나왔다고 합니다. 후에 욕심 많은 승려가 쌀을 혼자 차지하려고 이 곳을 파내자 그 후로 더이상 쌀이 나오지 않았다는 시골 기담이 현지에 전해내려옵니다. 절의 내부는 장엄하고 고요하며, 많은 여행객들이 관음보살(觀音大士)의 자비로운 얼굴을 보고 이 곳에서 마음의 평정을 얻고 있습니다. 절 앞 광장은 시야가 매우 좋아서 자난(嘉南) 평원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습니다. 저녁 무렵이 되면 석양 노을빛이 앞쪽 산을 따라 지어진 산책로 정자와 어우러져 매우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며 많은 사진가들이 이를 포착하기 위해 이곳을 찾습니다. 밤이 되어 도시의 등불이 켜지기 시작하면 타이난의 찬란한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가 됩니다.

신, 구 하오한포 보도(新、舊好漢坡步道)

일본 통치 시기 사병들이 치료와 재활을 할 때 관쯔링(關子嶺) 온천에 오기를 좋아했다고 전해집니다. 온천욕을 하며 정신과 체력을 회복한 뒤 험준한 산비탈 계단을 따라 왕복 훈련을 했는데, 구 관링(關嶺) 초등학교 아래쪽의 하오한포는 이로 인해 건립되었다고 합니다. 약 300여개의 계단이 있고 험준해서 오르기가 어렵기 때문에 당시 정상까지 오른다면 사내 대장부(하오한, 好漢)라는 말이 있어 하오한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후에 도로를 확장하면서 계단은 많이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에 시정부는 온천공원에 새로운 하오한포를 개발했고, 구 하오한포에 못지 않는 계단을 만들어 등반에 도전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안전성까지 겸비하였으며 시야 및 산림 경관도 완벽히 갖춰져 관쯔링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의 필수 방문 명소가 되었습니다. 하오한포를 오른 뒤에는 따끈한 머드 온천을 하면서 바로 피로를 해소할 수 있어 운동 및 양생 효과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다셴사(大仙寺)

바이허구(白河區) 전터우산(枕頭山) 기슭에 위치한 다셴사(대선사)는 쥬옌(舊巖. 오래된 사찰)이라고도 불립니다. 청나라 강희(康熙) 40년인 1701년 건립되었으며 석가모니, 삼보불조(三寶佛祖), 관세음보살 및 지장왕보살(地藏王菩薩)을 모시고 있습니다. 또한 개산법사(開山法師)의 사리를 모셔 참배 및 관람할 수 있습니다. 다셴사는 국가 지정 3급 고적이며 국내 불교 9대 문파 중 하나인 사찰이기도 합니다. 중국 불교 사찰 전통 건축 방식으로 지어졌으며 주위 환경은 고요하고 우아합니다. 1915년에 건립된 대웅보전(大雄寶殿)은 일본 나라(奈良)의 대불사(大佛寺) 외관을 본떴으며 지붕은 ‘일본식 기와’ 양식으로 되어있고, 전국에 보존된 일본식 지붕 구조를 가진 두 사찰 중 하나입니다. 대웅보전 통량(通樑)의 ‘레이진화(擂金畫, 금가루로 그린 그림)’는 채색화의 대가 리한칭(李漢卿)의 작품입니다. 또한 대웅보전 뒤편의 ‘대비출상도(大悲出相圖)’는 유명 화가 판리수이(潘麗水)의 작품입니다. 긴 세월동안 향불이 끊이지 않으며 신도들은 항상 이곳을 찾아 참배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습니다.

허우비 샤체동 징중먀오(後壁下茄苳旌忠廟)

징중먀오 사당은 1791년 건립되어 악무목왕(岳武穆王, 악비岳飛)를 모시고 있습니다. 징중먀오에서 가장 특별한 것은 첨시(籤詩, 점괘 뽑기)입니다. 이곳에 잠시 묵던 스님이 만들었다고 전해지는데, 모두 7언 절구로 쓰여있습니다. 내용을 해석하려면 첨시의 대표 인물과 시문의 내용을 알고 있어야 뽑은 첨시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중국어 고대 시 능력이 요구됩니다. 관심이 있다면 도전해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베이먼위 교회(北門嶼教會)

이 교회는 대략 1959년 흑족병으로 고생하는 현지 환자들을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당시 주민들은 장기간 비소가 함유된 지하수를 마셔 흑족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흑족병에 걸리면 결국에는 다리를 절단해야하기 때문에 많은 환자들이 이로 인해 시련을 겪었습니다. 이에 환자들이 심적인 구원을 얻고 의지할 수 있도록 교회를 설립했습니다. 당시 왕진허(王金河) 의사와 협력해 교회는 신앙으로 심리 치료를, 의사는 의학으로 질병 치료를 진행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수많은 베이먼 주민들의 우러름을 받고 있으며, 베이먼위 교회는 베이먼 소금 고향(鹽鄉)의 중요한 기억으로 자리잡았습니다.

베이먼 둥룽궁(北門東隆宮)

1673년 선현들이 바다를 건너 대만에 올 때 무사한 항해를 위해 리푸쳰쑤이(李府千歲) 신상을 가지고 이와 동행했다고 전해집니다. 안전하게 이 곳에 도착해 정착한 뒤 초가집을 세 채 지어 리푸쳰쑤이 신상을 모셨습니다. 그 후 1945년 핑둥 동강 둥룽궁에서 원푸쳰쑤이(溫府千歲)를 모셔온 뒤 함께 향을 올리고 백성들을 구원했는데, 이 때 둥룽궁으로 개명한 것을 지금까지 계속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3년에 한번 왕선 제전(王船祭典)을 개최하는데 현재 사당 내에는 영구 주둔하는 두 척의 왕선이 있습니다. 하나는 나무, 하나는 동으로 된 선박이니 꼭 한번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사당 옆의 왕예 신앙 문화관(王爺信仰文化館)에도 사당 문화에 관련된 소장품이 많이 있어 관람할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사당 앞 나무 아래의 슈비어뎨(秀碧蚵嗲)에서 판매하는 어뎨(굴튀김)도 이 곳에서 꼭 맛봐야 할 현지 먹거리입니다. 여기에 시원한 선초(仙草)차 혹은 쓰궈빙(四果冰) 빙수를 곁들이면 이것이 바로 타이난 시골에서만 누릴 수 있고 둥룽궁에 오는 또 다른 즐거움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