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史古蹟

타이난 이야기 영상관(구 정성공 쭈먀오)[臺南故事影像館(原鄭成功祖廟)]

정씨 일가 사당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정징(鄭經)이 1663년 건립한 것으로 부친인 연평군왕(延平郡王) 정성공과 모친 동비(董妃)를 모시고 있습니다.
최근 외벽을 철거한 뒤 길가 인도와 장벽이 없어져 더 많은 여행객들이 쉽게 발걸음을 멈춰 관람하고 있습니다. 부성에 왔을 때 옌핑쥔왕츠(延平郡王祠, 연평군왕 사당) 외에 정성공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중요한 거점입니다. 정전에는 정성공의 국내외 조상 및 정성공 부인 동비의 신위를 모시고 있습니다. 사당 내부에서 신상(神像), 오래된 건축물, 옛 우물과 수많은 옛 사진을 보고 있으면 마치 정씨 가족이 대만에서 세력을 펼치던 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타이난 역사의 보물상자라 할 수 있습니다.

대만 서우먀오 천단(톈궁먀오)〔臺灣首廟天壇(天公廟)〕

매년 정월 9일 옥황대제 탄신일이 되면 톈궁먀오 사당에서 기도를 꼭 올리는 것이 많은 타이난 사람들의 필수 코스가 되었습니다. 톈궁먀오 안쪽에서부터 잉 요정(鶯料理亭)을 따라 궁위안로(公園路)의 기상관 앞까지 인파가 늘어서서 매우 붐빕니다. 1845년 지어진 천단 톈궁먀오 자리는 정성공(鄭成功)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라고 전해집니다. 지금 모습은 여러 차례 개건과 증축을 거친 것이지만 사당 내에는 여전히 진귀한 고적 문물을 많이 보존하고 있습니다. 사당 내 좌우 벽의 복록(福祿) 문자 석조와 신전 안에 있는 한쌍의 똬리를 튼 용 모양의 화강암 기둥은 모두 1855년의 원작 그대로입니다. 또한 사당 안에는 오래된 편액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 ‘부성 3대 명편’에 속하는 ‘1자 편’이 가장 유명합니다. 이는 ‘인간이 아무리 생각을 짜본다 한들 하늘이 한 획을 긋는 것만 못하다’는 것으로 하늘에 대한 숭경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동악전(東嶽殿)

동악전은 부성 7사찰 8사당 중 하나로 1673년 지어졌으며 동악대제(東嶽大帝)를 모시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칭녠로(青年路) 청황먀오(城隍廟. 성황묘)의 성황신과 동일하게 저승을 관장하는 신입니다. 동악전은 몇차례 보수 및 도로 확장 등을 거치면서 배전(拜殿)을 철거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철거한 건축 자재들을 최대한 현재 사당 건물에 사용해 원래 모습과 매우 비슷한 모습입니다. 신전에는 편액이 몇개 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1882년 멍자(艋舺) 진영을 수비하던 뤄성뱌오(羅勝標)가 바친 ‘선악유보(善惡有報, 선악에는 보응이 있다)’입니다.
사당 내로 들어서면 저승대장(陰司大將)이 좌우로 서있는 스산한 분위기가 저승의 이미지와 들어맞아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동악대제의 엄숙한 위력을 느껴보고 싶다면 꼭 들어와서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제관팅(接官亭)

대만과 중국 사이는 대만해협으로 가로막혀있어 과거에는 왕래에 불편함을 겪었습니다. 관원들이 대만 각지로 파견 근무를 나가면 샤먼(廈門)에서 배로 갈아탄 뒤 파도가 거친 검은 물길(黑水溝, 현 대만해협)을 지나야 루얼먼(鹿耳門)에 도착할 수 있었고, 그 후 다시 한번 강을 건너야 부성에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고된 여정으로 피곤에 지친 관원들에게는 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고,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는 관원들은 배를 기다릴 동안 잠시 머물 수 있도록 나루터 근처에 영접 및 송별의 장소를 많이 세웠습니다. 즉 제관팅은 청조 때 문무 관원들을 송영하고 접대하는 장소로 사용된 곳입니다. 풍신묘 앞의 제관팅은 화강암으로 지어졌으며 앞쪽 현판에는 ‘쿤웨이용뎬(鯤維永奠, 이곳에 제관팅을 세움으로써 부성을 지키는 사주의 혈을 다져 길상을 이룬다)’, 뒤쪽 현판에는 ‘아오주칭톈(鰲柱擎天, 동요하는 자라를 제압하고 이로서 하늘을 떠받치다)’라 새겨져 있으며 기둥에는 화려한 조각 장식도 있으니 방문해 보실만 합니다.

쭝간궁(總趕宮)

쭝간궁 사당은 1704년 건립되었습니다. 당시 대만과 중국 대륙간에는 선박으로만 왕래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해운 수호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쭝간궁 안에 모신 니성궁(倪聖公)은 니쭝관(倪總管)이라고도 불립니다. 니성궁은 살아 있는 동안 바다 근처에 거주했기 때문에 항운과 항구 길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에 해운을 주관하고 옛 타이장(台江) 항운을 수호하는 니성궁이 타이난 특유의 신이 되었습니다. 어떤 이는 니성궁이 유일하게 배를 몰 줄 아는 신이라고도 합니다.
쭝간궁 근처에 오시면 항운 수호신 참관 외에, 옆에 위치한 솽취안(雙全) 홍차 가게에서 홍차를 구매해 맛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또는 밤에 사당 앞 인기 가게인 숯불구이 집에서 숯불구이에 시원한 맥주를 곁들이며 현지인들의 생활을 체험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카이지 링유궁(開基靈祐宮)

카이지 링유궁은 1665년 건립되어 현천상제(玄天上帝)를 모시고 있으며 전국에서 유일한 금면(金面) 현천상제 신상(神像)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최초로 설립된 사당이기 때문에 카이지(開基, 창건을 의미)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현천상제는 ‘북방의 신’을 대표하고 북방은 물에 속하며 대표색은 검정색이기 때문에, 현천상제 제사를 모시는 여타 사당과 동일하게 링유궁에도 검은색 기둥과 붉은 들보가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이외에도 사당 내의 많은 채색화와 석조는 부성 대가들의 작품들입니다. 정전 내의 ‘36관장(三十六官將)’ 벽화는 차이차오루(蔡草如)의 작품이며, 그 외에도 대가 판웨슝(潘岳雄) 및 천서우이(陳壽彝)의 진귀한 작품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대만 부성 성벽 남문 구간 유적(臺灣府城城垣南門段殘蹟)

대만 부성 성벽 남문 구간 유적은 타이난시 수린가(樹林街)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 테두리는 수린가와 마주보고 있고, 뒷쪽은 타이난 여자 중학교와 맞닿아 있어 타이난 여자 중학교를 둘러싼 담장의 일부분이 되었습니다. 남문 구간 유적은 옛 방식으로 보수되어 대체적으로 옛 모습으로 복원된 상태이며, 이 외에도 특별히 내부 구조가 노출된 구간을 남겨 관람할 수 있도록 해 그 진귀함이 느껴집니다. 현재 남문 구간 성벽 유적은 동서로 뻗어나가며, 타이난 여자 중학교 담장 구간은 그 길이가 약 80m가 넘고 높이는 약 4m 이상으로 비교적 보존이 잘 된 구간입니다. 외관상으로 삼합토를 사용해 옛 방식으로 쌓아 올려졌음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성벽의 부성 내부를 거의 볼 수 없는 상태에서 이렇게 성벽 구간 하나를 온전히 보존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풍신묘(펑선먀오.風神廟)

1739년에 지어진 풍신묘는 대만에서 유일하게 바람의 신 풍신을 모시는 사당으로 대만 부성 7사8묘(7곳의 절과 8곳의 사당)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중앙에 모신 주신은 풍신이며 양측으로 1청 1홍의 수신과 화신을 함께 모시고 있습니다. 제사 상의 좌측은 천둥의 신 뇌공, 우측은 번개의 여신 전모가 있습니다. 당시 대서문(大西門) 옆 난허항(南河港)가에 설립되었는데 중국에서 온 관원이 배를 타고 부성도인 타이난에 오면 먼저 관원 접대소인 제관팅(接官亭)으로 가서 풍신의 보우에 감사드리는 제사를 올린 뒤 부성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최근 몇 년 간 진행된 ‘빛의 사당(光之廟宇)’ 프로젝트로 인해 풍신묘에 야간 조명이 설치돼 고요한 신성함을 느낄 수 있으며 사당 앞 제관팅 옆의 복고 회화벽과도 어우러져 풍신묘의 분위기를 한층 부각시켜줍니다. 야간 산책시 꼭 방문해야 할 명소 중 하나입니다.

천더쥐탕(陳德聚堂)

천더쥐탕은 대략 명나라 영력(永曆)년간(1664년)에 설립되었으며, 지금은 전국 천(陳)씨 성 종가 사당이며 최근 타이난시 가이드 협회가 입주하였습니다.
천더쥐탕은 300여년동안 매우 잘 보존되어 왔습니다. 내부에는 대가 천위펑(陳玉峰)의 벽화 작품이 있고, 다른 사당과 마찬가지로 ‘한판캉 춰자오(憨番扛厝角, 어리석은 외국인이 집 모퉁이를 지탱하고 있는 모습)’라는 전통 장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관찰해보면 받치고 있는 대들보 모양이 다른데, 사각 대들보 위치를 따라 밖으로 가보면 사각 대들보는 배수관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빗물이 이를 따라 밖으로 흘러 마지막에는 처마의 용머리를 따라 떨어집니다. 이는 매우 아름다운 건축 설계로 이 곳에 오면 꼭 자세히 관찰해봐야 할 작은 포인트입니다.


타이난 더화탕(臺南德化堂)

더화탕은 대략 1838년에 설립되었고, 일본 통치 시기 도로 확장 및 2차 세계대전 공습을 겪으면서 지금은 옛날과는 다른 규모를 갖게 되었습니다. 더화탕은 재교 용화파(齋教龍華派) 사찰에 속하며, 재가 거사(在家居士, 출가하지 않고 속세에서 수행하는 불교 신자)의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이에 공간이 전통 민가와 동일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내부 공간은 불교 사찰에 있는 채색화와 장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정전에는 관음보살을 모시는 것 외에도 비교적 특수한 신상(神像)이 있는데, 바로 용화파의 조사 뤄쭈(羅祖)의 신상입니다. 또한 신상 앞에는 3개의 의자를 놓았는데, 이를 삼공의(三公椅)라 부르며 용화파 뤄쭈, 인푸넝(殷普能), 야오푸(姚普) 세명의 조사를 상징합니다. 또한 사당 안에서 대가 판리수이(潘麗水)의 벽화 작품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당의 오래된 편액으로는 청나라 동치(同治) 5년(1866년) ‘안찰사 순찰 대만 병비도(按察使銜分巡臺灣兵備道)’ 딩웨젠(丁曰健)이 바친 ‘혜보군생(惠普群生)’과 도광(道光) 7년(1827년)의 ‘관자재(觀自在)’이 비교적 유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