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史古蹟

수이셴궁 (水仙宮)

수이셴궁 시장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많은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배가 고파질 것입니다. 시장 안에 수선존왕(水仙尊王)을 모시는 수이셴궁 사당이 있어 이러한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수이셴궁은 1703년 건립되었고, 옛날에 이 곳은 우탸오항(五條港) 중 하나인 난스항(南勢港)이었으며 상인들이 운집하는 곳이었습니다. 사당 역시 현지 상인들이 자금을 모아 지은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수이셴궁은 당시 7사찰 8사당 중 하나였던 웅대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으며 그 대신 번화한 시장으로 변모했습니다. 수이셴궁을 참관하실 때는 시장에서 보물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이곳은 타이난의 주방이라 불릴 만큼 온갖 식자재들이 없는 것이 없습니다. 또한 역사가 오래된 먹거리 가게들도 숨겨져 있어서, 역사적 정신을 탐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거리를 드나들며 허기진 배를 맛있게 채울 수도 있습니다.

대만부 청황먀오(臺灣府城隍廟)

대만부 청황먀오(성황묘)는 대만부 성황위령공을 모신 도교 사당으로 중시구(中西區) 칭녠로(青年路)에 위치해있으며 국가 지정 고적으로 대만의 유명한 성황묘이기도 합니다. 1669년 둥안팡(東安坊)에 설립되어 당시에는 승천부 청황먀오(承天府城隍廟)라 불렸습니다. 이 사당은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정부가 지은 성황묘이며 정전(正殿)에는 대형 주판이 걸려있습니다. 이는 1937년 신도인 천장산 씨가 헌납한 것으로 주판 틀 상단에는 ‘타이난부 청황먀오(臺南府城隍廟)’ 여섯글자, 하단에는 ‘정축년 천장산 헌납(丁丑年陳江山奉獻)’, 좌우로는 ‘선악을 행할 권리는 사람이 스스로 결정하지만, 옳고 그름은 정해져 있어 변명의 여지가 없다(善惡權由人自作,是非算定法難容)’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는데, 성황신이 주판으로 세상 사람들의 잘잘못을 계산하며 악을 경계하고 선을 알린다는 의미를 상징합니다. 사당 내에는 부성 3대 명편 중 하나인 ‘네가 왔구나(爾來了)’ 현판이 있는데 세상 사람들에게 경계할 것을 권고하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두이웨문(兌悅門)

1836년에 지어진 두이웨문은 속칭 산호 석회암 성문이라고도 불립니다. 신이가(信義街)에 위치한 이 문은 현재 부성(府城)에서 유일하게 아직도 통행하고 있는 성문으로 신이가는 과거 산호 석회암 거리라 불렸습니다. 옛날 성문 밖은 전부 수로였으며 산호 석회암을 밸러스트(배의 균형 유지를 위해 놓는 중량물)로 사용했던 선박들이 이 근처를 왕래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변하고 세월이 흐르면서 성문의 중요성은 옛날 같지 않아졌습니다. 과거 타이난에 있었던 14개의 성문 중 이 성문만 지금까지도 사람이 통행하고 있습니다.
오래된 성문과 신이가의 창의적인 문화 상점들이 어우러져 타이난의 옛 것과 새 것이 공존하는 의의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사법 박물관(구 타이난 지방 법원)[司法博物館(原台南地方法院)]

1912년 건립된 구 타이난 지방 법원은 장엄한 원형 기둥과 원형의 바로크 양식 지붕으로 되어 있습니다. 내부로 들어가면 아름답고 채광이 좋은 웅장한 돔형 지붕이 보이고, 큰 원형 기둥 위에는 정교하고 아름다운 조각도 있습니다. 바닥은 빅토리아풍의 기하학적 도형의 컬러 모자이크 타일로 되어있는 등 곳곳마다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하는데 이는 모두 모리야마 마츠노스케의 작품입니다. 현재 법원 내부에는 법정, 자료실, 금고실 및 구류소가 남아있습니다. 원래는 고탑도 하나 있었는데 심각하게 훼손돼 철거되었습니다. 하지만 법원 내에 거꾸로 걸어 놓은 고탑 예술장치로 이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일명 고양이 길이라 불리는 맨사드식 지붕 트러스는 인원 한정 예약제로 관람할 수 있는데 인기가 많아 예약이 쉽지 않습니다. 이로부터 구 타이난 지방 법원 건축의 매력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칸시가 교회(看西街教會)

궈화가(國華街) 골목 사이에는 영국 세인트 폴 대성당을 본뜬 흰색 원형돔 교회가 숨겨져 있습니다.  타이난과 서양간의 교류 역사에도 중대한 의의가 있는 이곳은 바로 마야거(James Laidlaw Maxwell) 의사가 1865년 타이난에 와 의료 선교를 한 장소입니다. 당시 이 곳은 우탸오항(五條港)의 중요 거리였으며 거리가 서쪽을 향해 나아가기 때문에 칸시가(看西街)라 이름지었습니다. 마야거 의사는 이 곳에서 의료 선교를 한지 얼마 되지 않아 현지 수구파의 반대로 어쩔 수 없이 이곳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후 1868년 타이난으로 돌아와 현재의 신러우 병원(新樓醫院) 위치에서 의료 선교를 계속했습니다.
1951년 칸시가 교회가 완공된 뒤, 이러한 선교 개척사를 기념하기 위해 ‘칸시가 교회(看西街教會)’라 명명했습니다. 수이셴궁 시장(水仙宮市場)을 지날 때 골목 사이에 숨겨진 이 아름다운 교회를 찾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隆田chacha文化資産教育園区

テクノロジー、芸術、緑を取り入れた隆田文化資産教育園区が誕生

ここでは、産業遺産である「四鉄共構(台鉄、糖鉄、塩鉄、水鉄)」を保存しています。鉄道跡、計量室址、台塩隆田儲運站や倉庫群といった歴史的建築を見学することができるほか、台湾最大の「嘉南大圳(日本時代の水利施設)」をテーマにした没入型シアター、インタラクティブに触れ合える装置やパブリックアート、専門的な台南考古学センターも備え、新しいテクノロジー技術を通して100年前の優れた遺構を改めて知っていただくとともに、施設名であるChachaが意味する “Come Here Again” の通り、再び訪れていただけるような場所になることを願っています。

 

北倉、南倉、考古の3エリアに分かれた園区

 

北倉展示区

嘉南大圳をテーマにしたインタラクティブな学習空間、稲の研究室、伊東哲の座敷、没入型シアターで構成されています。没入型シアターには、インタラクティブ型と劇場型があり、インタラクティブ型は伊東哲の「嘉南大圳工事模様」を基に、人・土地・水源が織りなす関係をスクリーンと触れ合いながら体験でき、劇場型は彫刻や黄金の稲穂をメインに嘉南大圳の発展の様子を映像でご覧いただけます。

 

泮宫石坊(泮宮石坊)

「泮宫石坊」は本来は孔子廟の最も外側の出入り口で、乾隆年間に知府の蒋元枢によって孔子廟の改修が行われた際に新たに建てられたものです。石職人よる美しい彫刻の牌坊(門)は、台南まで運んでから建てられました。台湾全土でこのような門のある孔子廟は台南孔子廟だけです。日本統治時代に南門路ができ、それにともない石坊と孔子廟は隔てられることとなりました。本来の役割は徐々に人々に忘れられ、多くの人がこれが孔子廟の一部であるということを知りません。

長栄女子高校長栄大楼(長榮女中長榮大樓)

長栄女中(女子高級中学=女子高校)は台湾で最初の女性教育機関であり、1887年に創立され、当時は新楼女学校と称していました。纏足をしないことが唯一の入学条件でしたが、入学した生徒はわずか19名で、当時の社会における女性の地位がいかに低かったかがわかります。
 
学校本館と講堂はそれぞれ1923年と1933年に完成し、開校以来女性教育を重要な使命として今日に至ります。初期には教会関係者が校長を歴任し、第二次世界大戦開戦以降は日本人が校長を務めるようになりましたが、教会色の強いスタイルは失われることなく、長栄大楼は長栄女中の精神的な象徴でありつづけています。

勝利小学校講堂(旧勝利国民学校講堂)(勝利國小禮堂(原勝利國民學校禮堂))

勝利国民学校講堂は現在の勝利小学校内にあります。もともとは台南市竹圍国民学校として1939年に創立された台湾人児童のための小学校で、第二次世界大戦後の台南市東区における唯一の小学校でもありました。当時、抗日戦の勝利を祝って勝利国民学校と改称され、1953年には年国軍工兵支援部によって講堂が建設されました。小さな木材を組み合わせた大スパンの屋根架構の双坡式傾斜屋根(切り妻屋根)が特徴的な建物です。

潁川家廟(潁川家廟)

潁川家廟は清嘉慶年間に建てられ、1956年に全面改修が完了しました。潁川家廟はレンガ造りの建物で、陳家の最初の1祖先が居を定めた場所です。閩南式のロの字型建築で、2進3開間の配置となっており、,穿斗式の屋根組みとなっています。木造構造で、屋根は赤い仰合瓦、稜線は燕尾のように跳ね上がり、建物本体には草花、龍、雲などを象った装飾が施されていま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