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地藝文

구 안핑 진보정 저택(原安平陳保正厝)

진보정 저택은 청나라 시기에 옌핑가(延平街)에 위치했습니다. 이곳은 청나라 말기 푸젠에서 보낸 수군이자 일제 강점기 시기에 보정을 맡은 진직운(陳織雲)의 저택입니다. 전형적인 삼락식(三落式) 가옥이죠. 이후 옌핑가가 확장되면서 앞단의 일부가 철거되고 앞단의 중추 및 중, 후단만 남았습니다. 안에는 겹층 및 산호석 담이 있고, 중, 후단 사이 마당에는 또렷하게 보이는 보극조벽(保極照壁)이 있습니다. 42cm 두께의 붉은 벽돌을 쌓은 것으로 높이 약 4m에 넓이는 약 1.5m이고 조벽에 ‘보극(保極)’이라는 글자 팔괘가 새겨 있습니다. 상단에는 해, 달, 구름 장식이 있고 모서리마다 박쥐가 감싸고 있는데, 이 건물에서 가장 특색 있는 부분입니다.

향광 불당(香光聖堂)

타이난시 향광(香光) 불당은 종교의 비밀 결사 단체입니다. 미륵불과 연등불, 석가모니불을 섬기며 총면적은 약 1350평입니다. 불당 안에 있는 ‘무진장(無盡藏) 문물관’에서는 타이완 국내외의 귀중한 문물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아름답고 우아한 무극청허궁(無極清虛宮), 삼성전(三聖殿) 등 건물과 묘정 앞의 장식용 건물 및 대략 백여 년의 세월을 살아온 자바니카비스코피아는 불당에 장엄하고 고요한 분위기를 더합니다. 

승리 초등학교 강당(구 승리 국민학교 강당)(勝利國小禮堂(原勝利國民學校禮堂))

승리 국민학교 강당은 현재 승리 초등학교 안에 위치합니다. 원래는 타이난시 죽위(竹圍) 국민학교로, 1939년에 세워진 타이완 어린아이들의 초등학교였습니다. 이곳은 2차 세계 대전 직후에도 타이난시 둥구(東區)에 하나밖에 없는 초등학교였습니다. 당시 항일 전쟁 승리를 기념하고자 학교명을 ‘승리 국민학교’로 바꾸었고, 1953년 국군 공병 지원 부대가 강당 설립을 도왔습니다. 작은 목재와 큰 스팬의 이중 경사식 비스듬한 지붕은 이 건물의 특징이 되었습니다. 

타이난 2중(구 타이난 중고등학교 강당)(台南二中(原台南中學學校講堂))

구 타이난 중고등학교 강당은 1918년에 세워졌으며 현재 타이난2중의 소강당입니다. 일제 강점기 시기 일본인과 타이완인 중고등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서로 다른 체제에서 수학했습니다. 원래 일본 학생이 대다수였던 이곳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학생이 급감하면서 지금의 타이난 1중과 잠시 합병하였고 그 이후 정식으로 타이난  2중이 되었습니다.
 
 강당 건물의 주요 부분은 경사식 지붕을 사용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기 다른 학교의 건물과 마찬가지로 학교 느낌이 물씬 풍깁니다. 현재 강당 북쪽의 교단에는 일제 강점기 시기 천황 사진과 교육 칙령이 놓은 봉안실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입인 초등학교 충효루(立人國小忠孝樓)

시먼로(西門路)를 지나갈 때 이 특별한 건물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기는 힘듭니다. 보공 학교(寶公學校) 본관은 1938년에 세워졌습니다. 학교명은 이곳의 행정 구역이 ‘보정(寶町)’이라 학교 이름을 ‘보 공립 학교’가 아니라 ‘보공 학교’라고 지었습니다. 이걸 헷갈리는 관광객들이 항상 많습니다. 보공 학교는 일제 강점기 시기에 타이난시 지역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현대화한 공립 학교였습니다. 건축 형태 또한 매우 독특한데 본관의 평면 공간은 L형으로, 길모퉁이가 비스듬해 중앙 본관이 되었습니다. 입구와 메인 계단이 모두 이곳에 있고 양 끝에는 행정 공간과 교실이 있었는데 현재는 입인(立人) 초등학교의 충효루(忠孝樓)가 있습니다. 이곳은 학교 선생님과 학생들의 중고등학교 정신이 담긴 상징입니다. 시먼로(西門路)를 지나갈 때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이 아름답고 특별한 건물을 감상해 보는 건 어떨까요? 

구 안핑 항구 도류제 남쪽 제방(原安平港導流堤南堤)

안핑은 타이난 인근 해안입니다. 네덜란드 시기부터 시작해 정씨 왕조 시기를 거쳐 청 도광 2년까지 약 200년간 안핑은 타이완 섬과 연결되지 않은 작은 섬이었습니다. 안핑과 타이난 해안 사이의 해면은 태강만(台江灣)으로 불렸는데, 고대의 대형 선박이 드나들 수 있었고 수심은 약 5~6m였습니다. 안핑은 연이어지는 사주 중 하나였습니다. 원래 이름은 1곤신(鯤鯓)으로 남쪽으로는 현재 이인(二仁) 하구 부근까지 이어졌습니다. 이밖에 사주가 여섯 개 있었는데, 일곱 개 사주는 각각 1곤신부터 7곤신으로 불렸습니다. 안핑은 북쪽으로는 수로를 사이에 두고 있었습니다. 북선미 사주와 서로 마주 보고 있으며 이 수로는 태강만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길목이었습니다. 네덜란드인들은 이곳에 질란디아(안핑 고성)을 세워 요충지를 지켰습니다. 북선미의 북쪽은 루얼먼을 사이에 두고 사주와 서로 마주 보고 있었습니다. 이 또한 태강만에 들어가는 중요한 입구였습니다. 

잉촨 가묘(潁川家廟)

잉촨 가묘는 청 가경 년간  1956년에 준공했습니다. 잉촨 가묘는 벽돌 건물입니다. 진씨 가문 1대 조상이 발을 디딘 곳으로 민난식 ㅁ자형 건물입니다. 2번 들어가는 3중 구조에 트러스는 천두식(穿斗式), 구조는 나무 구조에 속합니다. 지붕은 붉은 앙합와(仰合瓦)로 덮었으며 용마루는 연미척(燕尾脊), 실내는 화초와 용문,  구름 모양 그림 등으로 장식했습니다. 

인수궁(仁壽宮)

인수궁은 대도공(大道公)과 나타의 제사를 지내는 곳입니다. 정씨 왕국 시기에 지어졌으며 주사(主祀)인 보생대제(保生大帝)는 300년 전부터 섬겼다고 하는데, 정성공(鄭成功)의 부하 무관 오구산(吳鳩山)이 바닷길이 순조롭기를 기도하면서 푸젠성(福建省) 퉁안현(同安縣)부터 보생대제 금불상을 몸에 지니고 다니며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원래 지방 인사들은 오씨 집안을 섬겼지만 보생대제가 영험하자, 신의 보호에 감사하다는 뜻으로 사당을 지었고, 여러 차례 증축을 거친 끝에 인수궁은 현재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택현당(擇賢堂)

엽석도(葉石濤) 기념관 근처에 있는 골목에 위치하고, 골목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세상과 격리된 것처럼 조용합니다. 택현당 건물은 오래된 색과 향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얀 벽에는 나무 원색의 문과 창이 박혀 있고, 녹색 환기 무늬 타일로 장식했습니다. 예배당의 진열 방식도 전통적인 모습을 여전히 지니고 있습니다. 1879년부터 지금까지 몇 차례 정비를 했지만 원래 모습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재교 선천파의 절이었지만 이제 불문 법사가 이곳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타이난 1중 홍루 및 소강당(구 타이난 주립 제2 중고등학교 교사 본관 및 강당)(南一中紅樓及小禮堂(原台南州立第二中學校校舍本館暨講堂))

약 1928~1931년 사이에 완공되었습니다. 타이난 1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역사 건축물입니다. 강당은 당시 타이완 총독부 영선과에서 설계하고 건설했으며, 타이완 대학 문학원과 같이 보기 드문 로마식 건축 형태입니다. 외부는 유럽 교회당같이 화려하고 기둥과 장식은 아주 섬세합니다. 학교의 느낌이 물씬 납니다. 본관의 일부는 타이난주 영선과에서 설계한 L형 건물입니다. 타이난 1중 학생들은 이 건물을 홍루라고 부릅니다. 이 두 가지 역사 건축물은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가장 아름다운 기억이자 중고등학교의 정신적인 상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