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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 중고등학교 역사관, 교목관(구 타이난 장로교 중고등학교 강당 및 교장 기숙사)(長榮中學校史館、校牧館(原台南長老教中學校講堂暨校長宿舍))

장영 중고등학교는 타이완 최초의 중고등학교입니다. 영국 기독교 장로 교회가 1885년에 세운 곳으로 청나라와 일제 강점기, 전후 세 시대를 거치면서 역사적인 건물과 문물이 상당히 풍성해졌습니다. 붉은색 교사관과 교목관은 교내에서 가장 중요한 일제 강점기 시기의 건물입니다. 붉은 벽돌 위에 올려진 하얀색 처마는 파란 하늘과 푸른 풀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자태를 뽐냅니다. 현재 관내에는 첫 영국 교장 조지 에드가 저술한 ‘삼자경 백화문 주해’와 각 과목 교재의 목각 인쇄판, 숯을 태워 빛을 모으는 환등기 등 당시 수업 기구 및 시설, 조지 교장이 바클레이 목사에게 쓴 친필 서신 ‘부성 사람들의 안위에 관하여’, 타이완 최초 인쇄기 등 역사적 의의와 가치가 있는 문물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절대 놓치지 마세요.

보은당(報恩堂)

보은당은 함풍 11년(1861년) 부치(府治) 동안방(東安坊) 우영포(右營埔)에 세워졌으며 선천파제교(先天派齋教)의 조사당이었습니다. 처음 세울 당시에는 누추한 초가집이었지만 동치 5년 (1866년)에 재건했습니다. 광서 12년(1888년) 신도들은 영원한 계획을 위해 재료와 사람을 모아 보은당을 기와 구조의 절로 변경했습니다. 메이지 29년(1896년) 일본인은 보은당을 타이난 병원으로 개조했고, 책임자인 정량모(鄭良謨)는 보상금과 신도들의 헌금으로 보은당을 현재 위치로 옮겼습니다.   타이난 보은당은 ‘타이난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통 목조 건축물’이라고 불립니다.  

타이완 부성 성벽 소동문 구간 잔해 유적(臺灣府城城垣小東門段殘蹟)

청 옹제 3년(1735년) 타이완 부성에 목책성을 세울 당시 소동문의 범위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우선 용산사(龍山寺)가 있는 정동쪽에는 대동문을 설치했습니다. 목책은 대동문에서 북쪽을 향하고 있었고 우영청(右營廳)까지 뻗은 후  동북 방향으로 소동문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정북쪽으로 가면 성추영(城守營) 주변에 대북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보통 소동문 구간이라고 하면 대동문성과 대북문성 사이를 가리킵니다.

타이완 부성 성벽 소동문 구간 성벽은 성리로(勝利路)에만 남아 있습니다. 회삼물로 외각을 만든 소동문 성벽 잔해 유적은 북쪽 샤오둥로(小東路) 약 200m부터 시작해, 남쪽 다쉐로(大學路) 약 65m까지이며 무성한 숲 아래에 감춰져 있습니다. 1966년 성공(成功) 대학은 광복영구(光復營區) 캠퍼스 매입 당시 캠퍼스 담장을 설치하기 위해 남쪽 구간 성벽을 철거했습니다. 

구 일본군 타이난 에이쥬 병원(原日軍台南衛戍病院)

일본 메이지 30년(1897년), 일본 육군 타이난 에이쥬 병원이 적감루에 설립됐습니다. 일본 다이쇼 6년(1917년), 일본군 제3기 영구병영 계획에 따라 중대형 규모의 원사가 일본군 보병 제2 연대(현 성공[成功] 대학 광복[光復] 캠퍼스)의 북쪽에 완전한 규모로 재건됐습니다. 일본 쇼와 12년(1937년), 타이난 육군 병원으로 개명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후 민국 37년(1948년), 이곳을 인수한 국민 정부군은 육군 훈련 사령부 군병원을 설립하고 9월 중순부터 환자를 치료했습니다. 1년 후 타이난성 육군 사령부 군병원으로 개명했으며 민국 39(1950년) 4월에는 ‘육군 총사령부 군병원’으로, 10월에는 다시 ‘육군 군관 학교 군병원’으로 개편했습니다. 민국 41년(1952년) 3월에는 ‘육군 독립 병원’으로, 5월에는 다시 ‘육군 병원’으로 개명해 육군 총부 직속이 되었습니다. 민국 43년(1954년), ‘육군 병원’은 ‘연근 제4 종합 병원’으로 승격해 연근 총사령부가 되었습니다. 민국 44년(1955년), 육군 보급 사령부 군의 소속이 되면서 병원명도 ‘육군 제4 종합 병원’으로 변경되었습니다.

마더우 문화관(麻豆文化館)

마더우 문화관은 2001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문화 건설 위원회가  ‘1 마을  1문화관’을 추진하면서 설립됐습니다. 현재 마더우구(麻豆區) 내에서 가장 완벽한 예술 문화 전시 공연 공간입니다. 문화관 내에서는 현재 마더우와 관련한 각종 문물을 전시 중입니다. 항상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며 예술가 및 문학과 사학 종사자들의 교류 장소로 이용됩니다. 한마디로 마더우구 문인들의 집합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더우 쌀 우유를 먹고 나서 다오펑(倒風) 내해 이야기관을 돌면 얼마나 좋을까요. 마더우의 근대 문학과 역사 및 본토 예술을 알고 싶다면 마더우 문화관을 들르세요.

타이완성 잔해 유적(질란디아 요새 내부 벽)[(臺灣城殘蹟(安平古堡內牆))

1622년 네덜란드가 세운 ‘오란여’ 성은 1640년 완공 뒤 ‘질란디아’로 개명했습니다. 성은 외성과 내성으로 나뉘는데, 사각형 모양의 내성은 총 3층이며 지하에 있는 아래층은 창고로 씁니다. 지상에는 1, 2층이 있으며 위층 사각 모서리에는 보루가 있고 보루 사이에는 북문과 동문, 남문이 있습니다. 북문 문미 윗부분에는 ‘ T'CASTEEL ZEELDIA GEBOUWED ANNO 1634(질란디아 1634년 건설)’ 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아래층 사각 모서리에도 보루가 있습니다. 기단 각 변의 중앙마다 반원형 보루가 있는데, 반원 중앙에는 우물이 하나씩 있습니다.

북측에는 작은 문과 계단이 있어 지하실 탄약고로 내려갈 수 있습니다. 1, 2층에는 성가퀴가 있습니다. 볼록 튀어나온 보루 주변에는 전망대가 있고, 보루는 포탑 역할을 하며,  각각 대포 다섯 대가 있습니다. 성보 전체는 찹쌀풀과 모래, 굴 껍데기 가루로 만들었습니다. 현존하는 성벽 및 반원형 보루 잔해유적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은 안핑 고성의 잔해 유적입니다.

타이난시 난잉 객가 문화회관(臺南市南瀛客家文化會館)

난잉 객가 문화회관의 현재 위치는 전 타이난 현정부가 선정한 것으로, 원래 타이난시 신잉구(新營區) 민즈단 (民治段) 275호의 현 정부 건물 두 개 자리였습니다.  2005년, 전 타이난 현정부가 세운 예산에 객가 위원회가 보조하면서, 2007년 3월 3일 정식으로 오픈했습니다. 2011년 4월 15일 타이난현과 타이난시가 합병한 후 ‘타이난시 난잉 객가 문화 회관’으로 개명했습니다. 타이난시 신잉구 중심에 위치한 회관에 들어서면 내부 장식에서 객가의 느낌을 물씬 느낄 수 있습니다.  이곳은 외부에 개방된 곳으로, 마을 주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객가 문화를 홍보하며 각종 연구 활동을 개최합니다.

적감 문화 단지(赤嵌文化園區)

1624년, 안핑에 질란디아를 세운 네덜란드인은 중심부와의 관계를 고려해 태강 맞은편에 있는 적감에(당시 타이난은 핑푸족 적감사의 소재지라고 불렸습니다) 정치와 경제 중심인 프로빈티아(오늘날 적감루)를 세웠습니다. 게다가 적감가와 프로빈티아가를 발전시키면서 부성에 상업 발전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동문 미술관(東門美術館)

동문 미술관에 가려면 사람들로 북적이는 리리(莉莉) 과일가게 옆 빌딩의 1층을 반드시 지나가게 됩니다. 1996년에 창립된 동문 미술관은 지난 몇 차례 동안 타이난 예술 박람회의 전시회장이었습니다. 밝고 쾌적한 전시회장에 들어서면 타이완 국내외 유명한 예술가들의 회화와 조각, 영상 및 뉴미디어 등 작품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곳은 타이난 당대의 뛰어난 예술 작품들의 전시 공간입니다.

완푸암 조벽(萬福庵照牆)

완푸암은 원래 정성공(鄭成功)의 부하 무관인 완준(阮駿)의 저택으로, 명 영력 연간(1646~1683)에 세워졌으며, 타이난시 고택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명 영력 연간 (1656년)에 완준은 저우산(舟山)을 지켰으며, 완준이 사망하고 3년 뒤, 완준의 부인과 명 황실의 후손, 유신 등이 정경(鄭經)을 따라 타이완으로 건너와, 영정왕부(寧靖王府) 뒤에 거주하였는데, 바로 현재 위치입니다. 완 부인은 이곳에서 불경을 외고 예불을 드리며, 평생 재계 수행을 했습니다. 완 부인이 사망한 후, 그 거처를 ‘완 부인사(阮夫人寺)’로 고쳐 불렀다가, 이후 ‘완푸암’이라 개칭되었습니다.
현재의 완푸암 조벽은 기존에 건축된 것으로, 300여년의 역사를 지녔습니다. 외벽에는 석회를 칠한 이 벽은 ‘조벽(照壁)’이라 부르며, 외부인이 바로 집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도록 하고, 풍수에서는 액운을 막아준다고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