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4년, 안핑에 질란디아를 세운 네덜란드인은 중심부와의 관계를 고려해 태강 맞은편에 있는 적감에(당시 타이난은 핑푸족 적감사의 소재지라고 불렸습니다) 정치와 경제 중심인 프로빈티아(오늘날 적감루)를 세웠습니다. 게다가 적감가와 프로빈티아가를 발전시키면서 부성에 상업 발전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적감 문화 단지의 랜드마크는 적감루(赤嵌樓)입니다. 문화 단지 범위는 대략 신메이가(新美街) 동쪽과 청궁로(成功路) 남쪽부터 민취안로(民權路)까지 사이의 구역입니다. 신메이가 일대는 17세기 타이난 해안선이 있던 자리입니다. 단지 내에는 적감루와 사전 대천후궁(祀典大天后宮), 사전 무묘(祀典武廟) 등 국가 지정 유적지가 우뚝 솟아 있습니다. 시공을 뛰어넘어 네덜란드와 정씨 왕조, 청나라 시절의 역사 궤적을 만나 보세요.
적감루는 초기 옛 타이난 성의 발전 중심지였습니다. 단지 내 수많은 유적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은 타이완에서 네덜란드와 정씨 왕조 시대의 건물을 전부 만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문화 단지입니다. 이곳에는 놓치면 안 되는 국가 지정 유적 세 가지가 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지 여행 면에서 특별히 추천한 적감루와 명나라 영정왕 왕부(현 대천후궁), 영정왕의 관제청을 개조한 사전 무묘는 놓치지 마세요.
이밖에 단지와 관련된 옛길과 기타 유적들이 있습니다. 정씨 왕조 유신의 종묘 진덕취당(陳德聚堂)과 언제나 향불 연기가 자욱한 천공묘천단(天公廟天壇), 명나라 영정왕이 쓴 편액이 걸린 북극전(北極殿), 금면 현천상제(金面玄天上帝)의 개기령우궁(開基靈佑宮) 등도 방문하기에 적합한 관광 명소입니다. 전통 공예를 구경하거나 전통 음식을 맛보고 싶다면 아래 장소들은 어떨까요? 유명한 자이파아호 자이파아호, 러우쫑 이펑 동과차, 백북(白北) 갯농어 연육탕, 청진(清珍) 오리 국수 가게, 금덕춘(金德春) 찻집, 구영서진(舊永瑞珍) 과자 가게, 오만춘(吳萬春) 향 가게, 융흥(隆興) 아연 등은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적감루 이름의 유래는 뭘까요? 적감루 주변에는 어째서 옛날 업종과 먹거리가 많을까요? 적감 문화 단지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적감 문화 단지에 오면 네덜란드부터 명나라 정씨 왕조, 청나라 시기에 걸친 옛 타이난 성 지역의 정수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곳은 1652년 네덜란드인이 세웠습니다. 원래 이름은 ‘프로빈티아’로, 행정과 상업 중심이었습니다. 건물은 사각형의 대좌(臺座) 세 개를 연결한 것으로, 1886년에 처마와 붉은 기와가 있는 건물로 개조했습니다. 안에는 문창각(文昌閣)과 해신묘(海神廟), 봉호서원(蓬壺書院) 등이 있습니다. 첫 설립 이후로 300여 년간 증축을 여러 차례 거쳤지만 타이난시에서 해당 건물의 중요성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적감루는 남쪽의 정원과 북쪽의 각루, 서쪽의 봉호서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초목이 우거진 정원에는 정성공이 항복을 수락하는 조각이 있고 각루의 주춧돌에는 돌거북이 비석 아홉 개가 있습니다. 이것은 대남문성(大南門城) 인근에서 옮긴 것으로 청 건륭53년(1788)에 임상문(林爽文) 평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공로비입니다. 비석은 화강석 재질로, 비석 머리 부분에는 용 두 마리 조각이 있으며, 비석 네 면에는 만주족어와 중국어 비석문이 서로 이웃해 있습니다. 모든 비석은 돌거북처럼 생긴 비희 위에 있는데, 비희는 아홉 용의 자식 중 하나로 무거운 짐을 잘 지고 외모가 거북이를 닮아 ‘구비(龜碑)’라고 불립니다.
현재 민난식 각루 두 채는 구 프로빈티아를 재건한 기좌(基座) 위에 있습니다. 원래는 작은 크기의 성보 위에 주요 건물이 한 채 있고 남북에 망루가 하나씩 있었지만, 현재는 네덜란드 시기 성보 유적 중에서 서쪽 문과 동북쪽 구석의 잔해 유적 두 개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곳에 가면 벽돌과 자재 더미를 확실하게 볼 수 있습니다. 전부 인도네시아 자와섬에서 가져온 것으로 찹쌀풀과 모래, 굴 껍데기 혼합물을 시멘트 모르타르처럼 사용했습니다.
각루 중 해신묘(海神廟)는 남쪽에 있고 문창각(文昌閣)은 북쪽에 있습니다. 두 건물의 지붕은 팔작지붕(重簷歇山)형식으로, 겹처마 사이는 사실 2층 부분이며 녹유 꽃병 난간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해신묘에는 현재 ‘적감루’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내부는 적감루의 전시관으로 사용 중이며 동쪽에는 꽃병 모양의 독특한 대문이 있습니다.
문창각(文昌閣)에는 여전히 심수겸(沈受謙)이 적은 문창각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1층은 전시 공간으로, 2층은 괴성에 제사 지내는 공간으로 쓰입니다. 오른손에는 주필을 들고 왼손에는 먹통을 들고, 한 발로는 자라 머리를 밟고 다른 한 발로는 별을 차는 모습은 장원 급제를 상징합니다. 두 건물 모두 기단(台基) 위에 세워졌습니다. 기단에는 용 형상의 어로가 있으며 벽면에는 서책이 펴진 형상의 창문이 있습니다.
2층 중앙에는 우물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질란디아로 통한다고 하는데, 이 말이 사실인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높이 올라간 기좌(基座) 주변에는 벽돌로 만든 난간이 있습니다. 남쪽의 난간에는 귀여운 아기 돌사자도 서 있습니다.
남쪽 기좌 벽에는 대대로 쌓아 올린 석비가 아주 많습니다. 서쪽 정원에도 석마와 산 바위, 무과 과거 시험용 바위 등 역사 문물이 도처에 널렸습니다. 봉호서원의 대문간은 봉호서원에서 청나라 시기의 건축 양식을 가장 잘 보존한 건축물입니다. 서쪽을 바라보고 소박한 장식이 일품이니 놓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