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시 구

허러 광장(河樂廣場)

허러 광장(河樂廣場)은 원래 차이나타운으로 타이난의 주요 상권이었습니다. 하지만 철거 후 2020년 3월 7일 워터 공원으로 탈바꿈했습니다. 타이난 시구 최대 워터 공원인 허러 광장은 포브스 잡지에서 ‘전세계에서 가장 기대되는 7대 공원’으로 선정되었습니다.

 

공원 내 일부 남은 차이나타운 구조물과 철거 복구 전시 구역을 통해 타이난 부성에서 가장 번화한 운하 선착장이 흥망성쇠를 겪은 차이나타운을 거쳐 오늘날 워터 공원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발자취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허러 광장의 이름은 서쪽에 있는 환허가(環河街)와 동쪽에 있는 캉러가(康樂街)에서 한 글자씩 따왔습니다. 허러(河樂)는 ‘온 가족이 화목하다(闔家歡樂)’를 의미하는 ‘화목(和樂)’과 중국어 발음이 같은데, 그 이름처럼 온 가족이 함께 물놀이를 하며 놀기에 적합한 워터 공원입니다.

반궁 돌패방(泮宮石坊)

‘반궁 돌패방’ 은 원래 공자묘 제일 바깥쪽에 있는 출입구였습니다. 건륭제 시절 지부 장원추는 공자묘를 복원하면서 해당 출입구를 재정비하고자 석공에게 아름다운 돌패방을 주문했고, 그때 이 아름다운 돌패방은 타이난에 세워졌습니다. 타이완에서 이런 돌패방을 만나볼 수 있는 공자묘는 타이난 공자묘밖에 없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절 난먼로(南門路) 개통을 위해 돌패방과 공자묘는 분리됐습니다. 돌패방의 원래 기능은 사람들 기억 속에서 점점 희미해져 갔고 이제는 돌패방이 공자묘의 부속 건물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택현당(擇賢堂)

엽석도(葉石濤) 기념관 근처에 있는 골목에 위치하고, 골목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세상과 격리된 것처럼 조용합니다. 택현당 건물은 오래된 색과 향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하얀 벽에는 나무 원색의 문과 창이 박혀 있고, 녹색 환기 무늬 타일로 장식했습니다. 예배당의 진열 방식도 전통적인 모습을 여전히 지니고 있습니다. 1879년부터 지금까지 몇 차례 정비를 했지만 원래 모습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재교 선천파의 절이었지만 이제 불문 법사가 이곳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보은당(報恩堂)

보은당은 함풍 11년(1861년) 부치(府治) 동안방(東安坊) 우영포(右營埔)에 세워졌으며 선천파제교(先天派齋教)의 조사당이었습니다. 처음 세울 당시에는 누추한 초가집이었지만 동치 5년 (1866년)에 재건했습니다. 광서 12년(1888년) 신도들은 영원한 계획을 위해 재료와 사람을 모아 보은당을 기와 구조의 절로 변경했습니다. 메이지 29년(1896년) 일본인은 보은당을 타이난 병원으로 개조했고, 책임자인 정량모(鄭良謨)는 보상금과 신도들의 헌금으로 보은당을 현재 위치로 옮겼습니다.   타이난 보은당은 ‘타이난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통 목조 건축물’이라고 불립니다.  

적감 문화 단지(赤嵌文化園區)

1624년, 안핑에 질란디아를 세운 네덜란드인은 중심부와의 관계를 고려해 태강 맞은편에 있는 적감에(당시 타이난은 핑푸족 적감사의 소재지라고 불렸습니다) 정치와 경제 중심인 프로빈티아(오늘날 적감루)를 세웠습니다. 게다가 적감가와 프로빈티아가를 발전시키면서 부성에 상업 발전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동문 미술관(東門美術館)

동문 미술관에 가려면 사람들로 북적이는 리리(莉莉) 과일가게 옆 빌딩의 1층을 반드시 지나가게 됩니다. 1996년에 창립된 동문 미술관은 지난 몇 차례 동안 타이난 예술 박람회의 전시회장이었습니다. 밝고 쾌적한 전시회장에 들어서면 타이완 국내외 유명한 예술가들의 회화와 조각, 영상 및 뉴미디어 등 작품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곳은 타이난 당대의 뛰어난 예술 작품들의 전시 공간입니다.

완푸암 조벽(萬福庵照牆)

완푸암은 원래 정성공(鄭成功)의 부하 무관인 완준(阮駿)의 저택으로, 명 영력 연간(1646~1683)에 세워졌으며, 타이난시 고택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명 영력 연간 (1656년)에 완준은 저우산(舟山)을 지켰으며, 완준이 사망하고 3년 뒤, 완준의 부인과 명 황실의 후손, 유신 등이 정경(鄭經)을 따라 타이완으로 건너와, 영정왕부(寧靖王府) 뒤에 거주하였는데, 바로 현재 위치입니다. 완 부인은 이곳에서 불경을 외고 예불을 드리며, 평생 재계 수행을 했습니다. 완 부인이 사망한 후, 그 거처를 ‘완 부인사(阮夫人寺)’로 고쳐 불렀다가, 이후 ‘완푸암’이라 개칭되었습니다.
현재의 완푸암 조벽은 기존에 건축된 것으로, 300여년의 역사를 지녔습니다. 외벽에는 석회를 칠한 이 벽은 ‘조벽(照壁)’이라 부르며, 외부인이 바로 집 안을 들여다 볼 수 없도록 하고, 풍수에서는 액운을 막아준다고도 합니다.

징푸사(景福祠)

1750년에 세워진 이곳은 푸지제(普濟街) 일대에서 매우 중요한 토지공 사당이자, 타이난에서 유일하게 고적으로 지정한 토지공 사당이기도 합니다.  과거 이곳은 오조항(五條港) 중 하나인  포터우항(佛頭港)으로, 드나드는 상선도 많고 향을 올리는 사람도 많았으며, 사당 안에는 ‘만물자생(萬物資生)’이라고 쓰인 가경년간(嘉慶年間)의 오래된 편액도 걸려있습니다. 현재 포터우항의 종적은 찾을 수 없지만, 징푸사는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후세 사람들은 징푸사를 보며 과거 흥성했던 시절을 추억하기도 합니다.

소씨 효부비(蕭氏節孝坊)

소씨 효부비는 궈 종합병원(郭綜合醫院) 뒤쪽 골목에 자리하고 있으며, 역사가 오래된 만큼 주변 환경도 변하고 민가도 많아져서, 오래된 패루가 민가 사이에 융화되어 있는 기이한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소씨 효부비는 타이완 전역에서도 보기 드문 단칸에 기둥 2개, 2층 구조로 이루어진 패루로, 구조와 장식이 가장 작은 석조 패루이기도 합니다. 이 석조 패루 위에는 절효(節孝)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원래 충효와 절개를 표창하기 위해 세워진 것입니다. 보통 30세 전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50세가 넘어서까지 재가하지 않고 수절하는 부녀자에게는 모두 절효 표창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그 표창 방식으로 소재지 정부에서 은 30냥을 하사하고, 본인이나 가족들이 직접 마을에 효부비를 세우게 되는데, 이 소씨 호부비는 바로 소씨 부인의 충효와 절개를 기리기 위해 세운 패루이자 타이난시에서 현재 유일하게 보존하고 있는 효부비이기도 합니다.

타이난시 미술관 2관(台南市美術館2館)

스자용 건축가 및 일본 반 시게루 건축설계 사무소가 공동으로 만들고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기획 설계한 건축물입니다. 봉황꽃을 컨셉으로 한 건물 본체와 오각형의 외관이 남부 미술관을 타이난을 상징하는 문화 랜드마크로 만들었으며, 수직으로 엇갈리는 스택 전시 공간은 프랙탈 지붕과 결합되어 남부 미술관 2관의 주요 외관을 구성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