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地藝文

쓰차오 다중먀오(四草大眾廟)

쓰차오 다중먀오는 ‘진해 원수(鎮海元帥)’(속칭 대중대왕)를 모시고 있습니다. 이름은 천쩌(陳澤)(천유(陳酉)라는 설도 있음)이고 대만인이며 정성공(鄭成功)의 장군으로서 용감하고 싸움에 능했습니다. 네덜란드군 삼백여명을 한번에 격퇴했으나 나중에는 간신으로 인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바다에 투신했습니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그가 죽을 때 거센 비바람이 불고 온 세상이 깜깜해졌으며 사체가 바다 위에 서서 쓰차오 다중먀오 현재 위치의 모래사장 앞으로 표류해왔다고 합니다. 청나라 강희(康熙) 39년 그의 공을 치하하고자 이 사당을 세우고 진해원수라 존칭했습니다. 사당은 지어진 지 200년이 넘었으며 안난구 쓰차오의 신앙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 곳에 와서 대중대왕에 복과 평안을 기원하는 것 외에도, 사당 옆 작은 아마존이라 불리는 쓰차오 녹색 터널 혹은 배를 타고 맹그로브 보호구역에도 꼭 방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네 종류의 서로 다른 맹그로브 나무가 서식하고 있으며 숲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또한 망원경으로 땅 위의 농게, 짱뚱어를 관찰할 수 있는 생태여행의 좋은 장소입니다.

루얼먼 진문궁(鹿耳門鎮門宮)

진문궁은 루얼먼 하구 옆에 우뚝 솟은 작은 사당입니다. 외관은 명나라식 건축 양식을 본떴으며 부성천험(府城天險. 부성의 천연 요새) 비석과 마주보고 있습니다. 이 곳은 대만 개척 영웅 정성공에게 제를 지내는 사당으로 루얼먼 천후궁(天后宮)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대만 전국에서 유일한 특색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두명의 '맨발 서양 수문신'이 있다는 것입니다. 서양 수문신은 사실 화가 린중신(林中信)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습니다. 정성공이 네덜란드인을 물리쳤으니 네덜란드인이 시중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는데 린중신의 상상 속에서 당시 네덜란드인들은 패배 후 도망갔기 때문에 신발이 벗겨져도 미처 신지 못했다고 생각해 신발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안핑 천주교 문물관(安平天主教文物館)

안핑 고성(安平古堡), 안핑 톈허우궁(安平天后宮)을 돌아 가장 서쪽에 위치한 것이 바로 천주교 타이난 교구 세인트 로렌스(聖樂倫) 천주교 성당입니다. 안핑 천주교 문물관은 성당 1층에 부설되어 있으며, 약 천점에 이르는 종교 문물을 비정기적으로 교체하며 전시합니다. 전시 문물은 천주교 문화 및 예배 의식 집기 위주로 제례 용품, 천주 성물 및 문헌 경전 등이 있습니다. 성배, 십자가, 케이프 예복, 성체 현시대, 성촉(유골), 성합 등 모두 백여년동안 전도사가 남긴 물품들로 기독 문명과 천주교회의 전도 역사를 전합니다. 또한 본토 교회 인사들이 창작한 종교 예술품도 전시하고 있어서 안핑 사람들과 천주교의 만남과 융합에 대해 보여줍니다.

이자이 금성(얼쿤선 포대)〔億載金城 (二鯤鯓砲台)〕

‘얼쿤선 포대’라고도 불리는 이자이 금성은 사각형 모양으로 사방에 보루가 있으며 해자로 둘러 싸인 붉은색 성입니다. 중앙의 잔디밭은 당시 사병 훈련 소재지로 지도상으로 보면 매우 균형잡힌 마름모꼴 디자인입니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이자이 금성은 군사 거점으로의 역할을 상실하고 매우 인기있는 관광지로 변모했습니다.  3-4월에는 주변에 황금 트럼펫 나무 꽃이 만개해 더욱 아름답습니다.

안핑 고성(安平古堡)

17세기 초 네덜란드인들은 군과 상이 결합해 1624년 오늘날의 안핑을 점령하고 질란디아 요새(熱蘭遮城)를 그 방어 요새로 건설했으며 1634년에 완공하였습니다. 1662년 정성공(鄭成功)이 네덜란드 성을 차지한 뒤 안핑전(安平鎮)으로 이름을 바꾸고 내성(內城)은 내부(內府)로 바꾸면서 대만인들이 이곳을 왕성(王城)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청나라 점령 시기 타이장(台江)이 침적으로 육지화되면서 그 중요성이 사라지고, 청나라 병사들이 질란디아 요새를 파괴하고 억재금성(億載金城)을 지으면서 점차 황폐해졌습니다. 일본 통치 시기 후 재건되었고 2차 세계대전 후 ‘안핑 고성’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현재 네덜란드 시기부터 남아있는 유적으로는 성 앞쪽 외성 남쪽 성벽의 벽돌벽이 있으며, 얽혀있는 반얀나무가 세상의 풍파를 겪으며 400여년 타이장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1975년 관광의 해를 맞아 타이난 시정부는 안핑 고성 지역 환경을 보수했습니다. 전망대에 첨탑형 지붕을 추가하고 벽에 흰색을 칠해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안핑 고성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안핑 소 포대(安平小砲臺)

청나라 도광(道光) 20년인 1840년 아편전쟁 기간에 건립되었으며 당시 대만 청나라 군사가 영국군을 막아내기 위해 건설한 해안 방어 조치 중 하나였습니다. 포대는 본체와 성을 보호하는 돌제방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돌제방은 좁고 긴 모양을 하고 남북으로 뻗어있으며 포대 본체는 연못공원(水池公園) 옆에 있습니다. 제방은 화강암으로 쌓았으며 북측 제방은 산호석과 삼합토로 건축되었습니다. 포안을 남겨두었으며 물을 막아주는 수문도 설치되어 있습니다. 직할시 고적으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대만에서 가장 완벽히 보존된 청나라 초기의 중국식 포대로 억재금성(億載金城)의 서양식 근대 포대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곳은 원래 안핑 해안의 중요 해안 방어 시설이었으나 후에 타이장(台江) 내해가 퇴적으로 인해 사라지면서 그 기능을 잃게 되었습니다. 옛날 위풍당당했던 포대는 이곳에서 상전벽해의 변화를 목도하고 있으며, 여행객들이 과거를 회상하는 좋은 장소가 되었습니다.

옌핑가 옛 우물(延平街古井)

옌핑가 옛 우물은 안핑(安平) 열란차성(熱蘭遮城. 질란디아 요새) 동남쪽 다위안(大員) 시가지의 스반가(石板街, 오늘날의 옌핑가延平街)에 위치해 있습니다. 당시 안핑 일대에서 귀한 담수원으로서 우물물의 수원이 풍부하고 물맛이 감미로웠다고 전해집니다. 현지인들이 이 우물물로 키운 콩나물(豆芽菜)이 매우 맛이 좋아 명성을 듣고 찾아와 구매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에 우물 근처 지역은 옛날 '더우차이랴오(豆菜寮)'라 불렸고 우물은 '더우차이야짜이징(豆菜芽仔井)'이라 불렸다고 합니다.

먀오서우궁(妙壽宮)

먀오서우궁 사당은 시 고적으로 지정되었으며 보생대제(保生大帝)를 모시고 있습니다. 먀오서우궁의 유래는 명정(明鄭) 시기 현지 주민이 신상(神像)을 실은 왕선(王船)을 발견하고 초가집을 지어 그곳에 모셨다고 전해집니다. 후에 이름이 ‘먀오(妙)’인 형과 ‘서우(壽)’인 동생, 이 형제가 먀오서우궁이 현재 위치한 곳의 토지를 기부해 먀오서우궁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당 앞에는 거의 닳아버린 작은 돌사자상이 한쌍 있는데, 어르신들의 말에 따르면 계속 시험에서 떨어졌던 가난한 거인(舉人, 향시에 합격한 사람)이 사당에서 진심으로 기도한 뒤 진사(進士)에 합격 후 기증한 것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인 사당 앞은 모두 용기둥 위주로 되어있지만 먀오서우궁은 박쥐 모양의 돌기둥으로 되어있습니다. 돌기둥은 원래 해산관(海山館) 소유였는데 일본 통치 시기 해산관이 민가로 징용되면서 박쥐 돌기둥을 먀오서우궁으로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2층으로 가면 보물을 볼 수 있는데, 바로 1867년 제작된 백년 왕선입니다. 왕선의 병장이 제사를 지낼 때는 일반 향불이 아닌 담배와 빙랑(檳榔)으로 제를 올린다는 점이 매우 특별합니다.

구 영국상 더지 양행(原英商德記洋行)

안핑(安平) 나무집 옆에 위치한 순백색 외관의 양식 건축물이 바로 영국상 더지(Tait) 양행입니다. 이는 더지 양행이 안핑 개항 후 타이난 안핑에 설립한 거점으로 당시 5대 양행 중 하나였습니다. 옛날 항구 운수가 아직 통행할 수 있었을 때 항구 주위에 자리잡았던 더지 양행은 주로 설탕, 장뇌, 찻잎을 수출했고 아편을 수입하는 등 한 때 번성했던 중요 상업의 거점이었습니다. 현재 더지 양행은 이미 상업적 기능을 상실하고 대만 개척 사료 밀랍 인형관(台灣開拓史料蠟像館)으로 기획되어 대만의 옛 생활 모습을 밀랍 인형으로 전시하고 있습니다. 대만 개척 사료 밀랍 인형관은 2001년 시공간 복도를 만들어 더지 양행의 역사와 성장의 발자취를 상세히 전시하고 있습니다.

린모냥 공원(林默娘公園)

안핑 어항(安平漁港)에 오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항구 옆에 우뚝 솟은 린모냥(林默娘, 마쭈) 동상으로 마치 타이난의 자유의 여신처럼 매일 드나드는 선박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매우 드넓어 아이들과 산책하기 좋고 주변 잔디밭에서 비누방울 거리 예술가를 따라다니며 놀거나 연을 날릴 수 있습니다. 또한 애완견을 데리고 나와 목줄에서 벗어나 잔디밭에서 뛰놀게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밤이 되어 달빛이 따뜻하게 마쭈(媽祖) 동상을 비추면, 마치 다정한 어머니가 자애로운 눈빛으로 이 곳에서 운동을 하거나 더위를 식히며 야경을 감상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 같고, 이 곳을 온화한 분위기로 감싸 안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