옌수이 구

융청 극장(永成戲院) 

융청극장은 1945년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전신은 극장이 아니라 황즈(黃直) 선생이 운영하던 ‘융청 정미소’ 였습니다. 일본 통치 시기 황가네 정미소는 일본 정부와의 장기 협력으로 정경계에 인맥이 아주 넓었고 사업이 매우 번창했습니다. 2차 대전 발발 후 정미소도 그 영향을 받게 되었고 일본인이 대만에서 철수한 뒤 정미소는 큰 타격을 받아 과거의 좋았던 시절은 지나가버리게 되었습니다. 황즈 선생은 이를 극장으로 개건하였는데 이 것이 바로 융청 극장의 유래입니다.
극장으로 변신 후에는 옌수이 일대의 정경계 유명 인사의 모임 장소가 되었습니다. 영화 상영 외에 가끔 극단 초청 공연도 있었으며 그 당시 옌수이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극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대의 변천에 따라 융청 극장은 2000년에 문을 닫게 되었고 그 후 타이난 시정부가 이를 보수하게 되었습니다. 내부에는 당시 극장에서 사용하던 커튼, 히노키 나무 벤치 및 영사기를 보존해 두었고 명절 때는 옛날 영화를 상영하기도 합니다. 극장 밖에는 영화와 관련된 설치 예술도 있으니 옌수이에 오실 때 놓쳐서는 안 될 장소입니다.

후비궁(護庇宮)

옌수이구 중정로(中正路)에 위치한 후비궁은 대만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3곳의 마쭈(媽祖)신 사당 중 하나입니다. 162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오늘날까지 이미 4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웨진(月津)항에 배와 상인들이 오가고 있었을 때부터 이곳에서 옌수이 사람들을 보우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항구 주변에는 여러 업종이 번창했는데 후비궁은 옌수이가 지금까지 발전하는 동안 옌수이와 함께해온 중요한 사당입니다.
사당 내의 수문장신은 대만의 국보급 채색 대가인 판리수이(潘麗水)가 그린 것으로, 눈빛에 생동감이 넘치며 어느 각도에서 보더라도 신의 눈빛이 우리를 향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매우 기묘합니다. 이곳의 채색 작품은 대가 판리수이가 비교적 젊은 시절일 때의 것으로 수문장신의 수염은 선 하나 하나가 겹치지 않는 매우 섬세한 기법으로 그려졌습니다. 대전 앞에서 마쭈신을 호위하는 천리안과 순풍이 두 신상(神像)은 1716년 세워져 이미 30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후비궁은 이처럼 풍부한 문물과 옌수이의 역사를 간직한 사당입니다.

웨진 항구 친수공원(月津港親水公園)

첫째는 타이난 부성(府城), 두번째는 루강(鹿港), 세번째는 멍자(艋舺), 네번째는 웨진(月津)이라는 말은 작은 지방 마을인 옌수이(鹽水)의 한창 때를 대표하는 표현입니다. 한 때 대만에서 4번째로 큰 도시였던 옌수이에는 매년 원소절이 되면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일제히 발사되는 펑파오 벌집 폭죽 세례를 앞다투어 받습니다.
2012년부터 개최된 웨진항 등불 축제로 웨진항 친수공원은 더욱 유명해졌으며 등불 축제 기간에는 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춘절 기간에 꼭 방문해야 할 중요 행사로 자리잡았습니다.
관광여행국이 운영하는 '옌수이 웨진항 유람' 산책 코스는 휴일 예약이 가능하며 전문 해설사가 여행객들을 인솔해 웨진 항구 가의 차오난 옛거리(橋南老街)에서 출발하여 청조 시대의 옛거리와 일본 통치 시기의 2층식 거리 가옥, 바로크 양식을 모방한 건축물들의 거리 경관을 관람합니다. 골목과 오래된 거리와 건물들을 통해 옌수이 지역의 옛 풍광을 엿볼 수 있어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옌수이 천주교 성당(鹽水天主聖神堂)

1955년 창립된 옌수이 천주교 성당은 많은 여행객들이 흥미로워하는 장소입니다. 천주교임에도 불구하고 건물이 사당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데, 만약 건축물 외관만 중국식이었다면 희귀하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내부는 중국과 서양의 합병의 극치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옛날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하도록 신부들이 생각해 낸 아이디어로 심지어는 명화 '최후의 만찬'도 중국식 버전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림의 음식은 바오쯔(찐빵)로 바꾸고 인물들은 젓가락 등 중국식 식기를 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중국과 서양을 융화한 대대적인 개조는 현지에 녹아들기 위함이었으며 당시 더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종교관을 쉽게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지금은 사람들의 의식이 많이 개방되어 당시 벽화가 더욱 진귀해졌습니다.

옌수이 차오난 옛거리(鹽水橋南老街)

차오난 옛거리로 들어가면 익숙한 소리가 들리는데 이는 옛거리의 취안리(泉利) 대장간에서 백년동안 매일같이 정해진 시간에 내는 소리입니다. 옛 옌수이의 제일 가는 거리였던 차오난 옛거리는 웨진(月津) 항구가 막히고 점차 몰락하면서 몇백 년 전 상인들이 몰려들고 시끌벅적했던 항구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쭉 늘어선 옛거리 건물들만 이곳에 남아 당시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차오난 역사 문물관에서 옛날 문물들을 관람하거나 차오난 커피숍에 앉아 그 당시를 회상해 볼 수 있습니다.
옛날 약첨(藥籤)으로 유명했던 현천상제(玄天上帝)를 모시는 북제전(北帝殿)에는 지금도 향불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옛거리 근처를 산책하면 근처 푸드코트인 뎬신청(點心城)에 가서 옌수이 이몐(鹽水意麵. 국수), 주터우판(豬頭飯. 돼지 머리 밥), 더우첸껑(豆簽羹. 걸쭉한 콩면)을 맛볼 수 있고, 배불리 먹은 뒤에는 인펑빙궈스(銀鋒冰菓室) 빙수가게로 가서 팥 우유빙수(紅豆牛奶冰) 또는 숨겨진 메뉴인 수박 레몬 주스(西瓜檸檬汁)를 디저트로 먹는 것이 차오난 옛거리를 관광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옌수이 우먀오(鹽水武廟)

옌수이 우먀오 사당은 1715년에 건립되어 관성제군(關聖帝君. 관우)을 모시고 있습니다. 매년 원소절(정월대보름)에 옌수이 펑파오(蜂炮, 벌집 폭죽)를 개최하면 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아 대만에서 가장 광적인 축제에 참가합니다. 원소절 전날부터 매우 많은 사람들이 옌수이에 모여들고, 당일에는 더욱 많은 인파가 몰려들어 작은 마을은 성대한 제전에 참가하려는 여행객들의 열정으로 넘쳐 흐릅니다. 옌수이 펑파오는 전염병 제거와 역귀를 보내는 관성제군 순례 의식으로부터 비롯되어, 오늘날 대만 원소절의 가장 중요한 행사로 변천되었습니다. 신의 가마(神轎)가 우먀오에서 출발해 행진을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지나가는 곳마다 열기가 달아오르고, 만개의 벌집 폭죽이 일제히 터지기 시작하는 놀라운 광경에 스릴을 좋아하는 국내외 관광객들은 신이 납니다. 원소절 종일 옌수이는 불야성처럼 시끌벅적하며, 이는 일생에 꼭 한번 체험해봐야 할 축제입니다.

웨진 항(月津港)- 쥐보팅 다중먀오 (聚波亭大眾廟)

과거 옌수이(鹽水) 웨진항에는 상인들과 상선들이 즐비했으며 쥐보위훠(聚波漁火, 쥐보팅에서 바라본 고기잡이 등불)는 당시 웨진 팔경 중 하나였습니다. 쥐보팅 옆의 다중먀오 사당은 1741년 건립되어 레이푸 대장공(雷府大將公)을 모시고 있으며, 옌수이 후비궁(護庇宮) 얼마자오(二媽角) 지대에 속합니다. 사당 주변 환경은 아름답고 아늑하며, 사당 앞 큰 나무 아래는 많은 현지 주민들이 오후에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고 바람을 쐬는 좋은 장소입니다. 사당에서 가장 특별한 것은1990년 사당 관리인이 약 5,000개의 마작패로 만든 작은 사당으로 쥐보팅 다중먀오의 사당 속 사당이 되었습니다. 이 안에는 무재신(武財神)을 모시고 있어서 많은 신도들이 수험표 또는 명함을 작은 사당 안 또는 신상 손 위에 올려두며 시험운과 사업운을 빌어 다중먀오의 독특한 광경이 되었습니다.

팔각루(八角樓)

팔각루는 1847년 건립된 목조 대저택입니다. 당시 옌수이 웨진(鹽水月津) 항구는 여전히 상선들이 자주 왕래하고 거리에 상인들이 드나드는 번화한 곳이었습니다. 설탕 사업으로 부유해진 예(葉)씨 일가가 탕산(唐山)의 기술자를 대만으로 초청해 건축했으며, 건축 자재는 모두 중국에서 넘어온 푸저우 삼나무(福州杉)와 벽돌로 이루어진 당시의 호화 저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후에 을미전쟁 발발로 일본군 상륙 후 후시미노미야 사다나루 친왕이 팔각루를 투숙지 및 지휘소로 이용하면서, 정원 내에 ‘후시미노미야 친왕 유적 옌수이항 통괄 설영소(伏見宮貞愛親王御遺跡鹽水港御設營所)’라는 비석이 세워졌습니다. 2차 세계대전 시기에 이르러 도로 개정과 연합군 폭격으로 일부분이 허물어졌으며, 전쟁 후 예씨 일가에 반환되었습니다.

대만 시의 길(台灣詩路)

이곳은 대만 문학을 사랑하는 린밍쿤(林明堃) 선생이 만든 곳입니다. 대만 시의 고향을 만들어 더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대만 시에 대해 알 수 있기를 바랬던 린밍쿤 선생은 “관망화(菅芒花)” 등 90여 수의 친숙한 대만 시구를 도편으로 구어 붉은 벽돌벽 위에 끼워넣었습니다.
대만 시의 길 단지에는 많은 꽃나무를 심어놓아 1년 4계절 모두 각기 다른 꽃들이 만개합니다. 가장 인기가 많은 목면화 외에도, 황금 트럼펫 나무, 연꽃, 대만 모감주 나무, 금종화, 플루메리아, 부용, 히비스커스 등 계절마다 다채로운 색깔 옷을 갈아입습니다. 시가 깔려있는 밭 기슭의 작은 길은 주변의 꽃 경치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시의 길을 만들어냅니다.
많은 여행객들이 이 곳에서 산책을 하고 차를 마시며 문학이 가져다주는 마음의 풍부함과 밭과 들 사이 화초 향기를 조용히 즐깁니다. 가끔 대만어로 대만 시를 읊는 린멍쿤 선생과 마주칠 수 있어, 이 곳의 대만스러움을 한층 더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