宗教廟宇

등산을 즐기는 산 사람들이라면 틀림없이 첸쭈묘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선조묘(쯔윈덴紫雲殿)은 바로 타이난 최고봉인 다둥산(大凍山) 등산로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선조묘 부지는 매우 넓으며, 선조 여동빈과 도교 교주 이노군(노자)를 주로 모십니다. 사당 안에는 푸른 기운이 가득하며, 정원에는 숲이 무성하고, 화초가 만개합니다. 주룽지(九龍池)에는 꼬리가 아홉개 달린 금룡이 살아 숨 쉬는 것 같으며, 사당 안 분위기는 ‘산은 높다고 명산이 아니고 신선이 있어야 명산이며, 물은 깊다고 영수가 아니라 용이 살아야 영수이다(山不在高,有仙則名;水不在深,有龍則靈)’라는 말이 딱 알맞은 곳입니다. 선조묘는 수많은 등산객들에게 추천하는 휴식처로, 고즈넉한 분위기와 차분한 사당의 분위기는 바쁜 현대인들이 천천히 쉬어가기에 더없이 좋은 곳입니다. 

타이난 기차역과 타이난 공원 사이에 위치한 시화당은 번화가에 숨겨진 비밀스러운 장소라 할 수 있습니다. 차로 번잡한 대로변을 지나 작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또 다른 조용한 세계에 들어선 듯합니다. 1750년에 창건된 시화당은 재교 금당파(齋教金幢派) 중 웡용펑(翁永峰) 분파의 절로 삼보불(三寶佛)을 주로 모시며, 현재 많은 수행 교우들이 이곳에 거주하며 예불을 드리고 있습니다. 시화당에 들어서면 그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에 마음이 평온해집니다. 이미 3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지닌 시화당이지만, 시화당의 건축물은 여전히 완벽한 보존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대청, 복도, 처마를 보고 있노라면, 수 백 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타이난에 오시면, 기차역에서 나와 여유롭게 타이난의 먹거리를 즐기고, 도시와 고적이 완벽하게 어우러진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는 시화당을 보러 오시길 바랍니다.

둔위앤 성묘라는 이름은 낯설지만, 구이런 공묘(歸仁孔廟)라면 좀 익숙하게 느껴지실 겁니다. 이곳은 원래 타이난현 경내에서 유일하게 공자를 모시던 사당으로, 원래 둔위앤사(敦源社)였기 때문에 둔위앤 성묘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둔위앤사는 타이난현 신펑구(新豐區)의 문인들이 1883년에 조직한 국학 사단이었는데, 1927년에 사우들과 시인들, 지방 사신들이 함께 기부금을 모아 사당을 건축하고, 공자의 동상을 주조해 모시면서 민영 소유의, 민영이 건축한 공묘가 되었습니다. 사당은 연미식 고전 건축물이며, 내부에는 용안 나무 수 그루가 우뚝 서 있습니다. 교외에 위치하고 있는 이 사당은 평상시에는 관광객도 많지 않고 조용해, 공자님과 함께 조용한 시간을 보내기에 안성맞춤인 곳입니다. 현재까지 매년 공자 탄신일이 되면 신펑구의 다섯 개 구청(룽치龍崎, 관먀오關廟, 구이런歸仁, 런더仁德, 용캉永康)에서 돌아가며 공자를 모시는 제사를 지내는데, 이처럼 민영 사당에서 정부가 주관하는 공묘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둔위앤 성묘만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리성궁은 타이난시 장쥔구 마사꺼우 지역 주민의 신앙의 중심으로 리푸 첸쉐이와 천상성모 및 중단원수를 모시고 있습니다. 국내 여러 우수한 기업가들이 이곳 출신인 것은 리성궁의 위세가 매우 높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지역 주민들 덕분에, 중요한 제전이 있을 때마다 외지에 있는 신도들도 고향으로 돌아와 축하 행사에 참여합니다. 리성궁 내의 백여 년 이상 된 노송나무 가마는 탕산 대가가 만든 것입니다. 조각이 매우 정교하고 전체가 맞물림 방식으로 만들어져 세세하게 감상할 만 합니다.
그밖에도, 리성궁 맞은편의 마사꺼우 어촌에는 윈린 관리처가 「어촌이 바로 미술관」이라는 컨셉으로 기획한 3D 그림마을이 있습니다. 총 20여 곳에 청핀 설립자 우칭여우의 옛집을 포함한 3D 그림 작품이 있으므로 그림을 구경하며 여행하기에 좋습니다.
리성궁 근처에는 장쥔 어항이 있어 유명 해산물 식당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게죽이 가장 인기가 높으며 많은 지역 주민들이 추천하는 필수 미식입니다.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 버클레이 목사는 1875년 바다를 표류하다 타이완에 도착한 후, 60년의 인생을 이곳에 바쳤습니다. 1926년에 세워진 버클레이 교회는 그리스식의 박공벽 및 로마식 아치가 있고, 앞에 반원형의 흰색 둥근 천장에는 영문 알파벳으로 「타이난 동먼 버클레이 기념 교회」라는 글자가 써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심플하고 우아한 건축물은 타이완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독특한 건축 양식을 보여줍니다.

빠지징 관제청은 대략 청나라 강희 연간에 세워졌으나, 지금의 건물 본체는 거의 백 년 전에 재건되고 잇달아 보수 공사를 거친 모습입니다. 현재 타이난시의 역사 건축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관제청의 문화 예술 헤리티지 어워드를 수상한 판리쉐이가 남긴 수문신 및 벽화 그림, 유명 서예가 주지우잉, 황궈수의 서법 대련, 건륭 연간의 편액과 옛날 사찰에서 이전해 온 점토 신상은 모두 문화자산의 보존가치를 지닌 것들입니다.

창싱궁의 기원은 강희(康熙)제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현지 선민들이 옛 타이장 내해(台江內海) 쩡원계(曾文溪)에서 왕선(王船)을 획득했는데 이를 길조로 여겨 강 옆에 초가집을 짓고 이로써 사당이 되어 참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강줄기가 끊임없이 변하고 치솟으면서 연안이 재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에 창싱공 사당은 계속 이전을 거쳐 현 위치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몇백년의 세월동안 3년 1과(3년에 1번 과거시험을 치루는 해에서 유래)의 왕선 제전을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창싱궁에 들어서면 재미있는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바로 대전 내의 주신(主神)이 신상(神像)의 모습이 아니라 영패(令牌)라는 것입니다. 이는 사당이 매우 많은 타이난에서도 드문 것으로 전통 문화를 좋아하는 여행객이라면 놓쳐서는 안 될 장소입니다.

쑤춰 전후궁 사당에 오시면 사당 앞에 위풍당당하게 걸려있는 편액을 보실 수 있습니다. 편액에는 ‘남영총진수(南瀛總鎮守)’라 쓰여있어 신의 위력이 광대함을 알 수 있습니다. 전후궁에서 모시고 있는 이부천세(李府千歲)는 류잉(柳營)에서 비롯되었다 전해집니다. 청나라 시기 류잉에서 왕선(王船) 한척을 강에 띄워 보냈는데, 예상치 못하게 왕선이 계류를 따라 쩡원(曾文) 강가에 정박했습니다. 현지인이 이를 발견한 뒤 신에게 지시를 청하였고, 결국 이 왕선을 마을에 남겨 촌민들을 보우하도록 했습니다. 모든 왕예(王爺) 신앙 문화처럼 전후궁 역시 3년에 1번 왕선제전을 개최합니다. 사당 내에 보존하고 있는 왕선 한척은 1958년 편백나무로 제작된 왕선으로, 이는 사당의 보물이며 대만 국보급의 왕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에 3년에 1번 개최되는 왕선제전 때가 되면 수많은 인파로 북적입니다. 이처럼 전후궁은 안딩(安定)의 중요한 왕예 신앙 사당입니다.

칭안궁 사당은 1810년 건립되었으며 시 고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칭안궁의 전신은 우원창(五文昌)을 모시는 원창츠(文昌祠)였습니다. 그러나 원창츠는 1862년 자난(嘉南) 대지진으로 훼손되었고, 후에 규모를 확장해 마쭈(媽祖) 사당으로 재건되었으며 타이난에서 마쭈를 모시는 3대 사당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사당에는 300여년 역사를 가진 네덜란드 옛 우물이 있습니다. 이는 네덜란드가 대만을 통치했던 시기의 역사의 산증인으로서, 지하에 다년간 숨겨져 있었지만 썩거나 탁해지지 않고 지금까지도 마르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매우 신기합니다. 산화구(善化區)에 오면 꼭 이처럼 우아하고 장엄한 칭안궁을 찾아 역사의 발자취를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옌수이구 중정로(中正路)에 위치한 후비궁은 대만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3곳의 마쭈(媽祖)신 사당 중 하나입니다. 162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오늘날까지 이미 4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웨진(月津)항에 배와 상인들이 오가고 있었을 때부터 이곳에서 옌수이 사람들을 보우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항구 주변에는 여러 업종이 번창했는데 후비궁은 옌수이가 지금까지 발전하는 동안 옌수이와 함께해온 중요한 사당입니다.
사당 내의 수문장신은 대만의 국보급 채색 대가인 판리수이(潘麗水)가 그린 것으로, 눈빛에 생동감이 넘치며 어느 각도에서 보더라도 신의 눈빛이 우리를 향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매우 기묘합니다. 이곳의 채색 작품은 대가 판리수이가 비교적 젊은 시절일 때의 것으로 수문장신의 수염은 선 하나 하나가 겹치지 않는 매우 섬세한 기법으로 그려졌습니다. 대전 앞에서 마쭈신을 호위하는 천리안과 순풍이 두 신상(神像)은 1716년 세워져 이미 30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후비궁은 이처럼 풍부한 문물과 옌수이의 역사를 간직한 사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