宗教廟宇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충칭사는 문학관 뒷쪽의 작은 골목 안에 위치하며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습니다. 충칭사의 역사는 17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1916년 현재 위치로 이전한 것입니다. 시대의 변천과 전쟁을 거치며 몇차례 훼손되었으나 보수 후에도 충칭사의 엄숙함과 장엄함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사원 안의 벽화와 수문신 등 모두 대가 판리수이(潘麗水)가 그린 것으로, 생동감있는 형합이장(哼哈二將)과 항룡복호 나한(降龍伏虎羅漢) 벽화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인기가 있는 신은 사원 내부의 월하 노인(月老)입니다. 월하 노인 앞에는 식초 항아리(醋矸)가 하나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반려자와 사이가 좋지 않을 때 식초 항아리를 저으며 진심으로 월하 노인과 보살에 기도하면 변한 감정을 돌이킬 수 있다고 합니다.

부드러운 굴곡을 이루는 '겹처마 헐산(重簷歇山)'식 지붕에 전면이 붉은색인 벽은 많은 사람들이 쓰뎬우먀오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입니다. 이곳은 타이난의 대표적 명소 중 하나로 약 1665년 건립된 대만 최초의 관제묘(關帝廟, 관우사당)입니다. 또한 당시 정부가 지은 사당 중 하나로, 사당 내부에는 위엄있는 관성제군(關聖帝君)을 모시고 있어 대관제묘(大關帝廟)라고도 부릅니다.
이곳에 오셔서 반드시 봐야할 것은 1791년 도대(道臺, 정부 관직명) 양팅리(楊廷理)가 적은 '대장부(大丈夫)' 편액으로, 간단한 세 글자로 사람들 마음 속의 관공의 이미지를 완벽히 형용해냈습니다.
향불이 피어오르는 쓰뎬우먀오에는 인기있는 신이 몇 분 더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세간의 인연을 담당하는 월하노인(月老)입니다. 쓰뎬우먀오의 월하노인은 타이난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월하노인이라 할 수 있는데, 인연을 비는 것 외에도 월로전(月老殿) 내에 우편함을 두어 인연을 비는 빠른 우편을 월하노인에게 보낼 수 있습니다. 매우 영험하다는 말이 있어서 외국인들도 진심으로 참배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역사에 기재된 바에 따르면 청나라 스랑(施琅)이 대만을 공격해 올 때 명나라 영정왕 주수구이(寧靖王朱術桂)는 순국을 결심했으며, 그의 5명의 비(妃)도 남편을 따라 생사를 함께할 것을 결심하고 왕부에서 잇달아 목을 매달아 자결했습니다. 주수구이는 직접 5명의 비들을 납관 및 발인한 뒤 자신 또한 자결하여 순국했습니다.
우페이먀오 사당은 1683년 건립되었습니다. 외관은 ‘단진(單進) 2호룡(護龍, 2개의 곁채)’ 형태의 고건축이며 옆에는 작은 사당이 하나 있는데 이는 ‘의령군묘(義靈君墓)’로서 당시 함께 순국한 두명의 시종에게 제를 지내는 곳입니다. 현재 우페이먀오는 부성 역사 여행의 중요 명소가 되었습니다. 내부 환경은 그윽하고 녹음이 가득하며, 근처에는 많은 가게들이 맛있는 음식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건너편에는 시끌벅적한 타이난 야구장도 있어 많은 사람들이 주말에 나들이를 오는 좋은 장소입니다.

일명 다마쭈궁(大媽祖宮)이라 불리며 원래는 영정왕 주수구이(朱術桂)의 관저였습니다. 1683년 스랑(施琅)이 군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 대만으로 와 정커솽(鄭克塽)을 대파시켰습니다. 그 후 민심 회복을 위해 특별히 청나라 조정에 요청해 영정왕 관저를 톈페이궁(天妃宮)으로 개조하고 마쭈 신을 모셨습니다. 후에 톈허우로 봉하여 ‘다톈허우궁(大天后宮)’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으며 대만에서 첫번째로 정부가 지은 마쭈 사당이 되었습니다. 사당 내에 들어서면 대전 내에 모시고 있는 거대한 금면(金面) 마쭈상이 보이고 그 옆에는 위풍 당당하고 생동감 있는 천리안과 먼 곳의 소리도 들을 수 있는 순풍이(順風耳)가 있습니다. 후전에는 월하노인(月老公公)을 모시고 있어 많은 싱글 남녀들이 이 곳에 와 참배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월하노인께 빌고 연분(緣粉, 분홍색 가루로 남녀의 인연을 뜻하는 연분緣分과 발음이 비슷함)과 붉은 실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인연을 불러온다고 합니다.

백년 옛거리인 선눙가(神農街)에 위치한 진화푸 사당은 1830년에 건립되었습니다. 당시 우탸오항(五條港) 5대 성씨 중 쉬(許)씨 성인 사람이 건립했다고 전해지며, 쉬씨 일가의 수호 사당이기도 합니다. 사당 내에는 관성제군과 마(馬), 리(李) 왕예(王爺)를 모시고 있습니다. ‘푸(府)’자가 명칭에 들어가는 사당 이름은 매우 드뭅니다. 선눙가는 당시 우탸오항 구역의 거리로 비교적 좁은 편이며 이 때문에 진화푸 또한 거리 가옥 형태에 제한을 받았으며 면적도 넓지 않습니다. 후에 몇번의 보수를 거쳤으나 원래 모습과는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밤이 되어 사당 문을 닫은 뒤에는 선눙가에 어슴푸레한 가로등이 빛나기 시작하며 붉은색의 진화푸 등불과 노란 가로등이 서로 어우러져 고전적인 정취가 물씬 느껴집니다. 사당 문 위에 수문신을 대신하고 있는 못이 등불에 비추어져 붉은색 사당 문에 아름다운 그림자를 만들어 주어, 보는 이들을 고풍스러운 분위기에 취하게 합니다.

정씨 일가 사당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정징(鄭經)이 1663년 건립한 것으로 부친인 연평군왕(延平郡王) 정성공과 모친 동비(董妃)를 모시고 있습니다.
최근 외벽을 철거한 뒤 길가 인도와 장벽이 없어져 더 많은 여행객들이 쉽게 발걸음을 멈춰 관람하고 있습니다. 부성에 왔을 때 옌핑쥔왕츠(延平郡王祠, 연평군왕 사당) 외에 정성공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중요한 거점입니다. 정전에는 정성공의 국내외 조상 및 정성공 부인 동비의 신위를 모시고 있습니다. 사당 내부에서 신상(神像), 오래된 건축물, 옛 우물과 수많은 옛 사진을 보고 있으면 마치 정씨 가족이 대만에서 세력을 펼치던 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타이난 역사의 보물상자라 할 수 있습니다.

매년 정월 9일 옥황대제 탄신일이 되면 톈궁먀오 사당에서 기도를 꼭 올리는 것이 많은 타이난 사람들의 필수 코스가 되었습니다. 톈궁먀오 안쪽에서부터 잉 요정(鶯料理亭)을 따라 궁위안로(公園路)의 기상관 앞까지 인파가 늘어서서 매우 붐빕니다. 1845년 지어진 천단 톈궁먀오 자리는 정성공(鄭成功)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라고 전해집니다. 지금 모습은 여러 차례 개건과 증축을 거친 것이지만 사당 내에는 여전히 진귀한 고적 문물을 많이 보존하고 있습니다. 사당 내 좌우 벽의 복록(福祿) 문자 석조와 신전 안에 있는 한쌍의 똬리를 튼 용 모양의 화강암 기둥은 모두 1855년의 원작 그대로입니다. 또한 사당 안에는 오래된 편액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 ‘부성 3대 명편’에 속하는 ‘1자 편’이 가장 유명합니다. 이는 ‘인간이 아무리 생각을 짜본다 한들 하늘이 한 획을 긋는 것만 못하다’는 것으로 하늘에 대한 숭경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동악전은 부성 7사찰 8사당 중 하나로 1673년 지어졌으며 동악대제(東嶽大帝)를 모시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칭녠로(青年路) 청황먀오(城隍廟. 성황묘)의 성황신과 동일하게 저승을 관장하는 신입니다. 동악전은 몇차례 보수 및 도로 확장 등을 거치면서 배전(拜殿)을 철거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철거한 건축 자재들을 최대한 현재 사당 건물에 사용해 원래 모습과 매우 비슷한 모습입니다. 신전에는 편액이 몇개 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1882년 멍자(艋舺) 진영을 수비하던 뤄성뱌오(羅勝標)가 바친 ‘선악유보(善惡有報, 선악에는 보응이 있다)’입니다.
사당 내로 들어서면 저승대장(陰司大將)이 좌우로 서있는 스산한 분위기가 저승의 이미지와 들어맞아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동악대제의 엄숙한 위력을 느껴보고 싶다면 꼭 들어와서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1739년에 지어진 풍신묘는 대만에서 유일하게 바람의 신 풍신을 모시는 사당으로 대만 부성 7사8묘(7곳의 절과 8곳의 사당)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중앙에 모신 주신은 풍신이며 양측으로 1청 1홍의 수신과 화신을 함께 모시고 있습니다. 제사 상의 좌측은 천둥의 신 뇌공, 우측은 번개의 여신 전모가 있습니다. 당시 대서문(大西門) 옆 난허항(南河港)가에 설립되었는데 중국에서 온 관원이 배를 타고 부성도인 타이난에 오면 먼저 관원 접대소인 제관팅(接官亭)으로 가서 풍신의 보우에 감사드리는 제사를 올린 뒤 부성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최근 몇 년 간 진행된 ‘빛의 사당(光之廟宇)’ 프로젝트로 인해 풍신묘에 야간 조명이 설치돼 고요한 신성함을 느낄 수 있으며 사당 앞 제관팅 옆의 복고 회화벽과도 어우러져 풍신묘의 분위기를 한층 부각시켜줍니다. 야간 산책시 꼭 방문해야 할 명소 중 하나입니다.

천더쥐탕은 대략 명나라 영력(永曆)년간(1664년)에 설립되었으며, 지금은 전국 천(陳)씨 성 종가 사당이며 최근 타이난시 가이드 협회가 입주하였습니다.
천더쥐탕은 300여년동안 매우 잘 보존되어 왔습니다. 내부에는 대가 천위펑(陳玉峰)의 벽화 작품이 있고, 다른 사당과 마찬가지로 ‘한판캉 춰자오(憨番扛厝角, 어리석은 외국인이 집 모퉁이를 지탱하고 있는 모습)’라는 전통 장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관찰해보면 받치고 있는 대들보 모양이 다른데, 사각 대들보 위치를 따라 밖으로 가보면 사각 대들보는 배수관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빗물이 이를 따라 밖으로 흘러 마지막에는 처마의 용머리를 따라 떨어집니다. 이는 매우 아름다운 건축 설계로 이 곳에 오면 꼭 자세히 관찰해봐야 할 작은 포인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