宗教廟宇

안핑 고성 옆에 위치한 안핑 카이타이 톈허우궁 사당은 현재 안핑구에서 가장 큰 사당으로, 사당 앞 광장 또한 광대합니다. 톈허우궁의 마쭈(媽祖) 신상은 보기 드문 롼선 신상(軟身神像. 관절이 있어 사지가 움직이는 조각상)이라 전해집니다. 1668년 정성공 선대(鄭成功船隊)가 메이저우(湄洲)에서 대만으로 왔을 때 사당을 짓고 제를 지냈기 때문에 개막의 의미로 카이타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대만 마쭈 신앙의 주요 중심지 중 하나로, 4년에 한번씩 개최되는 '안핑 마쭈맞이 행사(安平迓媽祖活動)'는 톈허우궁의 최대 행사입니다.

카이위안사(개원사)는 타이난 4대 옛 사찰 중 하나로, 북원 별관(北園別館)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습니다. 1680년에 처음 건립되었으며, 카이위안사의 전신은 연평왕 정징(延平王鄭經)이 모친인 동태비(董太妃)를 모시기 위해 지은 별관이었습니다. 사찰 내 정원 조경, 누정과 궁방 모두 매우 정교하고 우아하며, 굽이진 작은 다리와 망루 등 건축물이 더해져 전국 정원 중의 으뜸이라는 명예를 얻었습니다. 현재 사찰 내에는 명정(明鄭) 시기의 문물을 많이 보존하고 있어 옛 대만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 거점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불학원(佛學院), 유치원, 자애 병원(慈愛醫院)을 설립해 현대 사람들의 생활에 가까이 다가가고 일상에 녹아든 아름다운 고적으로 자리잡았습니다.

1662년 명나라 시기 건립된 카이지 톈허우궁 사당은 대만 최초로 민간이 세운 마쭈(媽祖) 사당입니다. 그 규모가 다톈허우궁(大天后宮)에는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타이난 사람들은 작은 마쭈 사당이라고 부릅니다. 규모가 크지 않고 작은 사당이지만 신의 거대한 위엄은 여전히 느껴집니다.
최근에는 카이지 톈허우궁 맞은편의 쥬라이파 빵집(舊來發餅舖)이 인기를 얻어 근처에 여행객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신메이가(新美街)의 아이스크림 가판대도 톈허우궁 앞에 노점을 차려 새로운 사당 디저트 문화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싼산궈왕(삼산국왕)은 광웨(廣粵) 지역의 민간 신앙에서 비롯되었습니다. 1742년 건립된 타이난 싼산궈왕 사당은 대만에서 유일한 정통 광동식 건축물로, 삼산의 신인 건산국왕(巾山國王), 명산국왕(明山國王), 독산국왕(獨山國王)을 모시고 있습니다. 삼산국왕 외에도 한문공(韓文公)과 천상성모(天上聖母)도 모시고 있습니다. 입구에 오면 일반적인 사당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다른 사당처럼 화려하지 않으며 벽면의 채색화에는 튀지 않고 소박하며 우아한 색깔을 사용했습니다. 배전(拜殿)의 용과 호랑이 부조는 매우 정교하여 그냥 지나쳐선 안될 관람 포인트입니다. 사당 내에는 역사가 오래된 편액들이 많이 있습니다. 정전에는 건륭황제(乾隆皇帝)가 하사한 ‘포충(褒忠)’이 있고, 한문공 사당 내에는 광서황제(光緒皇帝)가 하사한 편액이 있습니다. 정전 뒤쪽에는 4개의 곁채가 있는데 그중 한 곳에서는 삼산국왕 부인을 모시고 있습니다. 사당 전체에서 차오산(潮汕)의 짙은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민남식과는 다른 사당 건축물을 보고싶다면 삼산국왕 사당이야말로 놓쳐서는 안될 역사 고적입니다.

1684년 건립되어 현천상제(玄天上帝)를 모시며, 이곳의 역사 변천은 과거 현지의 염전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300여년간 농사와 천일염 만들기를 생업으로 하는 향민들을 보우해 오면서 현지인들의 정신적 신앙의 의지처가 되어왔습니다. 옛날 옌청 사람들은 잘 말린 소금을 북극전 근처의 ‘판강(泮港)’ 항구에서 안핑(安平)등으로 운송했습니다. 지금은 하천 항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사당 근처의 복잡하게 얽힌 거리에서 그 실마리를 엿볼 수 있습니다. 12년에 한번씩 개최되는 북극전의 대건초(大建醮) 순례 노선은 대략 옛 지도 상의 물길과 동일해, 이로부터 천일염의 역사와 관련이 있음을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타이난시 난취 완리(南區灣裡)에 위치한 만년전은 완리 주민들의 가장 주된 신앙 중심입니다. 1729년 지어졌으며 엽(葉), 주(朱), 리(李) 삼부천세(三府千歲)를 모시고 있습니다. 12년마다 1번 열리는 왕초대전(王醮大典)은 매우 보기 어려운 행사이며 몇달에 걸쳐 진행되는 건초(建醮) 행사도 있습니다. 이 때 사당에서 모시는 왕선과 함께 순례(繞境, 라오징)를 진행해 참석 인파가 매우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왕선 신앙에서는 왕선을 불태워버리는데, 이는 세속의 역병을 가져가 민간에 역병을 남기지 않는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왕선은 현지 민중들의 최초 신앙이기 때문에 순례 의식만 진행하고 왕선을 불태우지는 않습니다. 이는 만년전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초 행사의 특색으로, 이 때문에 평일에도 많은 여행객들이 사당 내에 모셔진 오래된 왕선을 직접 보고 참배하러 옵니다.

완황궁 사당은 대략 1739년에 건립되었으며 옥황상제의 명을 받들어 지역을 순시하는 신인 대천순수(代天巡狩) 예(葉), 주(朱), 리(李) 삼부천세(三府千歲)를 모시고 있는 지역 신앙의 중심입니다. 사당 건축물은 황궁 형태를 본떠 매우 장대하고 규모가 큽니다. 사당 내 채색화와 조각은 모두 유명한 대가의 창작품으로 판리수이(潘麗水), 차이차오루(蔡草如), 스훙이(施弘毅)의 작품이 있습니다. 12년에 한번씩 개최되는 완황궁 왕선(王船) 건초(建醮. 대형 제사 의식)는 현지의 큰 행사로, 앞쪽 광장에 사당만큼 장관을 이루는 초대형 제사단과 왕선을 만들어 많은 문화 사진 촬영가들이 놓치지 않는 촬영 소재가 됩니다.
최근에는 시수 마을(喜樹聚落)의 ‘시스지(喜事集)’ 장터가 크게 인기를 얻어 더욱 많은 참배 인파가 모여들고 있습니다.

전국 최초 쓰쿤선(四鯤鯓) 룽산사는 전국 최초 쓰쿤선 조사 공묘(祖師公廟)라고도 불리며, 전국에서 최초로 청수조사(清水祖師)를 모신 사당입니다. 사당은 대략 명나라 영력(永曆) 19년인 1655년에 건립되었습니다. 정성공을 따라 대만에 온 취안저우부(泉州府) 안시현 군민들이 '안시 칭수이옌(安溪清水巖)'에서 모셔온 청수조사의 신상과, 장저우부 핑허현(漳州府平和縣) 이민자들이 싼핑사(三平寺)에서 모셔온 '삼평조사(三平祖師)' 신상을 쓰쿤선에 세운 사찰에 함께 모셨습니다.
그간 수차례 복원과 확장을 거치면서 오늘날의 눈부신 모습을 갖게 되었습니다. 비록 이름은 룽산사지만 다른 룽산사처럼 관음보살을 모시는 것이 아니고 청수조사를 모시고 있습니다.
룽산사에서 가장 특별한 것은 수문신 그림이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수문신이 아닌 4대 귀신왕(四大鬼王)이라는 점입니다. 이는 청수조사가 굴복시킨 부장(部將)이라 전해지며, 이 역시 대가 판리수이(潘麗水) 의 작품입니다.

옌청 톈허우궁 사당은 1758년 건립되어 천상성모(天上聖母, 마쭈媽祖)를 주신으로 모시고, 무혜존왕(武惠尊王)을 함께 모시고 있습니다. 과거 사당 뒷편은 ‘판강(帆港)’ 이라 불리는 항구였습니다. 옛날 주민들은 이곳 염전에서 생산한 소금을 안핑(安平)으로 운송했기 때문에, 현지인들은 이 사당을 ‘판강 톈허우궁’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사당 밖에는 비석이 하나 모셔져 있는데, 마쭈신의 지시로 비석이 득도를 하게 되어 제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에 옌청 톈허우궁에 특별한 석두공(石頭公)이 하나 더 생기게 된 것입니다.

타이난 동구(東區)에 위치한 룽산사는 부성 7대 사찰 8대 사당 중 하나로 청나라 강희(康熙)년간 1715년에 건립되었습니다. 당시의 둥먼성 밖은 산호석으로 지어졌으며 원래 사찰은 1778년 재건된 바 있습니다. 일본 통치 시기에 도로 확장으로 인해 철거되었다가 여러차례 복원을 거쳤으며, 지금 볼 수 있는 모습은 원래 위치에 재건된 새로운 모습입니다. 3층으로 된 사찰 내에는 청나라 시기의 현판 등 많은 문물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비록 청나라 시기 당시의 건축물은 아니지만 오래된 사찰의 분위기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