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地藝文

국립 타이난 대학(구 타이난 사범학교 본관)[國立台南大學(原台南師範學校本館)]

국립 타이난 대학교 캠퍼스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붉은색 건물은 1922년 건립된 구 타이난 사범학교 본관입니다. 당시에는 ‘대만 총독부 타이난 사범학교’라 불렀습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 중 공습으로 포탄에 맞아 거의 지붕 전체가 훼손되었다가 1947년에 이르러 보수되었습니다. 건축 공간은 쌍십자 형태로 붉은 벽돌을 주요 건축 재료로 사용하여 훙러우(紅樓)라 불립니다. 본관 앞에는 류큐 소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1923년 히로히토 황태자 순시 때 심어졌다 전해지며 이는 훙러우와 함께 타이난 대학의 정신적 상징이 되었습니다. 6, 7월이 되면 훙러우 안의 황금 소나기 나무 꽃이 만개합니다. 황금빛의 폭포같은 꽃과 붉은 벽돌이 어우러져 본관을 관람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입니다.

아사쿠사 신천지(淺草新天地)

주말마다 정싱가(正興街), 궈화가(國華街) 일대를 지나가면 반드시 붐비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특히 그 안에 위치한 아사쿠사 신천지는 젊은이들이 모여 문화 창의 마켓을 여는 곳입니다. 1933년 일본인이 서문(시먼. 西門) 시장 주위에 점포를 짓고 ‘아사쿠사 상가’라 불렀던 것이 아사쿠사 신천지의 유래입니다. 이후 서문 시장이 개건을 거친 뒤 상권을 살리고 젊은 사람들이 방문하도록 하기 위해 서문 아사쿠사 중고 마켓을 기획하고 각종 홍보 활동을 하면서 성공적으로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주변 상권도 함께 살아나 주말이 되면 창의력으로 가득한 중고 마켓에 사람들이 몰리고 거리 예술가 공연도 펼쳐집니다. 아사쿠사 신천지는 이제 서문 시장에서 없어서는 안될 특유의 문화가 되어 시장에 계속 창의성과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고 있습니다.

서시장(큰 식료품시장)〔西市場(大菜市)〕

서시장은 많은 타이난 현지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중요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1905년 시먼로(西門路)에 지어진 공영 시장으로 타이난 사람들은 일명 ‘큰 식료품 시장(서쪽 식료품 시장)’이라 부르기도합니다. 이곳은 과거 대만 남부 지방의 가장 큰 시장으로 유규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원래 목조로 지어진 시장은 몇번의 보수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되었습니다. 가장 번성기 때 시장 2층에는 고급 양식 레스토랑이 있었으나 지금은 볼 수 없습니다. 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여섯자리 전화번호가 적힌 오래된 간판들을 볼 수 있습니다. 지붕 위의 어수선한 쇼와시대 전선들은 서시장에서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을 휘감고 있는 듯해 시간이 여기서 멈춘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시장 상업 형태가 변화하면서 서시장은 타이난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원단 시장’이 되었습니다. 오색 찬란한 천 가게들이 이곳에서 타이난 스타일의 패션을 보여주고 있으며 많은 서민 음식들이 숨겨져 있는 곳으로 타이난에서 지나치면 안될 고적 시장입니다.

진화푸(金華府)

백년 옛거리인 선눙가(神農街)에 위치한 진화푸 사당은 1830년에 건립되었습니다. 당시 우탸오항(五條港) 5대 성씨 중 쉬(許)씨 성인 사람이 건립했다고 전해지며, 쉬씨 일가의 수호 사당이기도 합니다. 사당 내에는 관성제군과 마(馬), 리(李) 왕예(王爺)를 모시고 있습니다. ‘푸(府)’자가 명칭에 들어가는 사당 이름은 매우 드뭅니다. 선눙가는 당시 우탸오항 구역의 거리로 비교적 좁은 편이며 이 때문에 진화푸 또한 거리 가옥 형태에 제한을 받았으며 면적도 넓지 않습니다. 후에 몇번의 보수를 거쳤으나 원래 모습과는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밤이 되어 사당 문을 닫은 뒤에는 선눙가에 어슴푸레한 가로등이 빛나기 시작하며 붉은색의 진화푸 등불과 노란 가로등이 서로 어우러져 고전적인 정취가 물씬 느껴집니다. 사당 문 위에 수문신을 대신하고 있는 못이 등불에 비추어져 붉은색 사당 문에 아름다운 그림자를 만들어 주어, 보는 이들을 고풍스러운 분위기에 취하게 합니다.

예스타오 문학 기념관(구 산림 사무소)[葉石濤文學紀念館(原山林事務所)]

예스타오 선생은 대만 본토 문학에 있어서 중요한 문학가입니다. “이 곳은 사람들이 꿈을 꾸고, 일을 하고, 연애와 결혼을 하고, 여유있게 살아가기에 좋은 곳이다” 이는 예스타오 선생이 타이난에서 생활한 후에 남긴 감상입니다. 기념관은 2층으로 되어있는데 1층에는 타이난 부성 문학과 배경을 전시하며 타이난 부성의 소설, 수필, 평론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스타오 선생의 생애와 저작, 주요 작품 및 수기 원고도 전시하고 있습니다. 2층 전시 구역은 예스타오 문학 서재, 다큐멘터리 감상실 및 예스타오 응접실 특별 전시 구역입니다. 응접실에 서서 책상 위에 놓여진 예스타오 선생의 안경과 애용하던 펜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정신이 아직도 계속해서 창작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타이난 이야기 영상관(구 정성공 쭈먀오)[臺南故事影像館(原鄭成功祖廟)]

정씨 일가 사당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정징(鄭經)이 1663년 건립한 것으로 부친인 연평군왕(延平郡王) 정성공과 모친 동비(董妃)를 모시고 있습니다.
최근 외벽을 철거한 뒤 길가 인도와 장벽이 없어져 더 많은 여행객들이 쉽게 발걸음을 멈춰 관람하고 있습니다. 부성에 왔을 때 옌핑쥔왕츠(延平郡王祠, 연평군왕 사당) 외에 정성공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중요한 거점입니다. 정전에는 정성공의 국내외 조상 및 정성공 부인 동비의 신위를 모시고 있습니다. 사당 내부에서 신상(神像), 오래된 건축물, 옛 우물과 수많은 옛 사진을 보고 있으면 마치 정씨 가족이 대만에서 세력을 펼치던 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타이난 역사의 보물상자라 할 수 있습니다.

대만 서우먀오 천단(톈궁먀오)〔臺灣首廟天壇(天公廟)〕

매년 정월 9일 옥황대제 탄신일이 되면 톈궁먀오 사당에서 기도를 꼭 올리는 것이 많은 타이난 사람들의 필수 코스가 되었습니다. 톈궁먀오 안쪽에서부터 잉 요정(鶯料理亭)을 따라 궁위안로(公園路)의 기상관 앞까지 인파가 늘어서서 매우 붐빕니다. 1845년 지어진 천단 톈궁먀오 자리는 정성공(鄭成功)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라고 전해집니다. 지금 모습은 여러 차례 개건과 증축을 거친 것이지만 사당 내에는 여전히 진귀한 고적 문물을 많이 보존하고 있습니다. 사당 내 좌우 벽의 복록(福祿) 문자 석조와 신전 안에 있는 한쌍의 똬리를 튼 용 모양의 화강암 기둥은 모두 1855년의 원작 그대로입니다. 또한 사당 안에는 오래된 편액들이 많이 있는데 그 중 ‘부성 3대 명편’에 속하는 ‘1자 편’이 가장 유명합니다. 이는 ‘인간이 아무리 생각을 짜본다 한들 하늘이 한 획을 긋는 것만 못하다’는 것으로 하늘에 대한 숭경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동악전(東嶽殿)

동악전은 부성 7사찰 8사당 중 하나로 1673년 지어졌으며 동악대제(東嶽大帝)를 모시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칭녠로(青年路) 청황먀오(城隍廟. 성황묘)의 성황신과 동일하게 저승을 관장하는 신입니다. 동악전은 몇차례 보수 및 도로 확장 등을 거치면서 배전(拜殿)을 철거해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철거한 건축 자재들을 최대한 현재 사당 건물에 사용해 원래 모습과 매우 비슷한 모습입니다. 신전에는 편액이 몇개 있는데, 가장 유명한 것은 1882년 멍자(艋舺) 진영을 수비하던 뤄성뱌오(羅勝標)가 바친 ‘선악유보(善惡有報, 선악에는 보응이 있다)’입니다.
사당 내로 들어서면 저승대장(陰司大將)이 좌우로 서있는 스산한 분위기가 저승의 이미지와 들어맞아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동악대제의 엄숙한 위력을 느껴보고 싶다면 꼭 들어와서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제관팅(接官亭)

대만과 중국 사이는 대만해협으로 가로막혀있어 과거에는 왕래에 불편함을 겪었습니다. 관원들이 대만 각지로 파견 근무를 나가면 샤먼(廈門)에서 배로 갈아탄 뒤 파도가 거친 검은 물길(黑水溝, 현 대만해협)을 지나야 루얼먼(鹿耳門)에 도착할 수 있었고, 그 후 다시 한번 강을 건너야 부성에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고된 여정으로 피곤에 지친 관원들에게는 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고,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는 관원들은 배를 기다릴 동안 잠시 머물 수 있도록 나루터 근처에 영접 및 송별의 장소를 많이 세웠습니다. 즉 제관팅은 청조 때 문무 관원들을 송영하고 접대하는 장소로 사용된 곳입니다. 풍신묘 앞의 제관팅은 화강암으로 지어졌으며 앞쪽 현판에는 ‘쿤웨이용뎬(鯤維永奠, 이곳에 제관팅을 세움으로써 부성을 지키는 사주의 혈을 다져 길상을 이룬다)’, 뒤쪽 현판에는 ‘아오주칭톈(鰲柱擎天, 동요하는 자라를 제압하고 이로서 하늘을 떠받치다)’라 새겨져 있으며 기둥에는 화려한 조각 장식도 있으니 방문해 보실만 합니다.

쭝간궁(總趕宮)

쭝간궁 사당은 1704년 건립되었습니다. 당시 대만과 중국 대륙간에는 선박으로만 왕래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해운 수호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쭝간궁 안에 모신 니성궁(倪聖公)은 니쭝관(倪總管)이라고도 불립니다. 니성궁은 살아 있는 동안 바다 근처에 거주했기 때문에 항운과 항구 길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에 해운을 주관하고 옛 타이장(台江) 항운을 수호하는 니성궁이 타이난 특유의 신이 되었습니다. 어떤 이는 니성궁이 유일하게 배를 몰 줄 아는 신이라고도 합니다.
쭝간궁 근처에 오시면 항운 수호신 참관 외에, 옆에 위치한 솽취안(雙全) 홍차 가게에서 홍차를 구매해 맛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또는 밤에 사당 앞 인기 가게인 숯불구이 집에서 숯불구이에 시원한 맥주를 곁들이며 현지인들의 생활을 체험해 보는 것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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