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시 구

구 타이난 주청-대만 문학관(原台南州廳-台灣文學館)

대만 문학관은 타이난 시내 중심가에서 가장 중요한 랜드마크라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인 건축가 모리야마 마츠노스케가 설계했으며 1916년 준공되었습니다. 일본 통치 시기였던 당시 타이난 주청은 타이난 최고의 행정 중심이었으며,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폭격으로 훼손되었다가 보수를 거쳐 원래 모습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전후에도 오랫동안 타이난 시정부 소재지였다가 지금은 문화 예술 분위기가 가득한 대만 문학관이 되었습니다. 맨사드 지붕으로 되어있고 입구에는 우아한 유럽식과 일본식을 융합한 원형 기둥이 있습니다. 매년 성탄절 전후로는 문학관 앞에 초대형 트리를 세워 타이난시에 낭만과 따스함을 더해줍니다. 또한 대만 문학을 풍부하게 소장하고 있어 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찾아와 관람을 하는 등 타이난에서 지나쳐서는 안될 중요한 랜드마크 입니다. 

북극전(중시구)[北極殿(中西區)]

북극 현천상제(玄天上帝)를 모시고 있는 북극전은 타이난에서 지대가 비교적 높은 곳인 주링(鷲嶺) 위에 위치해 있습니다. 북방 현무(玄武)는 검정에 속하기 때문에 다른 사당과는 다르게 검정색을 주 색깔로 한 것이 북극전의 큰 특색 중 하나입니다. 사당 내에는 타이난시에서 가장 오래된 편액이 있는데, 이는 1669년 명나라 영정왕 주수구이가 바친 ‘위현혁혁(威顯赫奕)’ 편액입니다. 사당 내의 오래된 종은 청나라 도광(道光)17년(1837년) 타이난 부성의 유지인 우상신(吳尚新. 우위안(吳園) 정원 설립자)가 중국 대륙 구쑤(姑蘇)로 가 주문 제작하여 사당에 선물한 것입니다. 이처럼 역사가 유구한 북극전 내부에는 곳곳에 보물들이 있습니다. 사당 옆 작은 골목은 옛날 지도에서는 나막신 골목이라 불렸습니다. 과거 골목 안에는 나막신을 제작하는 상점이 많이 모여있었는데, 지금은 비록 당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옛날 타이난 주요 거리의 번화했던 모습을 느껴볼 수 있습니다.

B.B.ART

1932년 일본인 하야시 호우이치가 창립한 하야시 백화점(林百貨)은 타이난 스에히로쵸 니쵸메(末廣町二丁目)에 오픈한 타이난에서 처음으로 엘리베이터가 있던 건물입니다. 타이난 현지 사람들은 속칭 고잔라우아(5층 건물)라 부릅니다. 원래 1등은 쉽게 기억하지만 그 이후는 잘 신경쓰지 않는데, 타이난시의 두번째 백화점은 민취안로(民權路)에 있는 메이리안(美麗安) 양품점 입니다. 1대 메이리안은 현 B.B.Art 대각선 맞은편에 있었습니다. 2대 때 현B.B.Art 위치로 이전했고 3대 때 다시 중정로(中正路)로 이전했습니다. 고개를 들면 옛 건물 꼭대기 박공에 남아있는 ‘미(美)’자를 보실 수 있는데 이는 메이리안 양품점이 남긴 흔적입니다. 현재 1층과 3층은 전시공간으로 각기 다른 예술 전시회가 종종 열리고 2층은 커피숍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옛 건물로 들어가면 옛 건물만이 가지고 있는 구조의 매력이 느껴집니다. 세로로 긴 구조로 되어있는 건물 내에는 천정이 뚫린 큰 안마당이 있어 대저택의 기세가 느껴집니다. 이러한 옛건물에서 커피를 마시고 전시회를 보는 것도 만족스러운 주말을 보낼 수 있는 한 방법일 것입니다.

잉 요리(鶯料理)
취령식사(鷲嶺食肆)

잉 요리는 일본 통치 시기 타이난의 ‘꿈의 요리정’이라 불렸으며 당시 ‘대만 제일의 칼질’이라는 명성을 가지고 있던 일본인 아마노 히사요시가 창립해 운영했습니다. 타이난시 중심부에 위치해 있으며 근처에 타이난 주청(州廳), 시협의회, 자난 다전 조합(嘉南大圳組合), 칸교 은행(勸業銀行) 등 중요 관공서와 공공 건축들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 정경계 인사들이 연회를 열고 모임을 하는 인기 장소였습니다. 이에 ‘타이난 지하 정책 결정 센터’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잉 요리는 음식 수준이 높으며 특히 장어구이 밥은 사람들의 화제가 되었습니다. 1923년 일본의 쇼와 천황이 아직 황태자이었던 당시, 타이난을 행차하고 지사 관저에서 머무를 때 지명되어 식사를 준비한 것이 요정(料亭) ‘잉랴오리(鶯料理)’이다.

대만 부성 대남문(臺灣府城大南門)

공자묘 정남쪽 멀지 않은 곳에 타이난의 잘 보존된 성문 중 하나가 있습니다. 근 290년의 역사를 가진 이 고적은 그 옆에 위치한 많은 이야기가 담긴 비림(비석이 전시된 장소)과 함께 조용히 공원의 고무나무 숲 안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외적을 막던 당당한 자부심은 이미 사라지고 지금은 공을 세우고 물러난 노장군처럼 갑옷을 벗어 던지고 밭으로 돌아가 친근한 할아버지가 되어 성 내에서 성장하고 있는 모든 이들과 함께 도시의 변화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지금과 같은 아름다운 색깔도 아니었으며 매일 성을 지키는 수문장만이 그와 한 팀을 이루었습니다. 당시 성 안 사람들에게 있어 이는 안심할 수 있는 보호벽이자 매일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길이었습니다. 당시 적을 막기 위해 세워진 반월형의 옹성은 그 형태로 인해 월성(月城)이라 이름 붙여 졌습니다. 지금은 도시 사람들이 달빛 아래 음악회를 듣는 장소로 변모하여 여전히 월성이라는 이름에 부합하고 있습니다.

카이지우먀오(開基武廟) 

일명 제비 뽑기 골목이라 불리는 신메이제(新美街)에는 관우를 모시는 사당이 하나 있는데, 바로 속칭 관제 항구 사당이라 불리는 카이지우먀오(개기무묘)입니다. 과거 선박이 시내로 진입할 수 있었을 당시 카이지우먀오는 하천 항구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비교적 특별한 점은 사당 문에 박은 못으로 수문신을 대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1858년부터 지금까지 걸려있는 오래된 종이 하나 있으며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편액도 있습니다. 가경(嘉慶)제 때의 행대도(行大道)와 광서(光緒)제 때의 입인극(立人極) 모두 꼭 둘러봐야 할 것들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당 내에 호랑이신 형상인 후예(虎爺)를 제사상 밑에 모셔놓는데, 이 곳은 벽의 작은 신감(神龕, 신상이나 위패를 모셔두는 장)에 모셔놓았습니다. 이는 사당 부지가 작아 공간 활용을 위해 조정한 것이라 합니다. 

다섯 항구 문화단지(五條港文化園區)

다섯 항구 문화단지는 타이난 중시(中西)구에서 가장 많은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는 단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청조 중엽에 타이장(台江) 강은 점점 막히게 되었지만 다섯 개의 강길은 여전히 해변에서 부성으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이에 다섯 개의 하천 항구 주변 구역은 번화한 상업 중심지가 되었고 이는 현 타이난시 중심인 중시구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다섯 개의 하천 항구는 북쪽부터 남쪽까지 신강첸항(新港墘港), 포터우항(佛頭港), 난스항(南勢港), 난허항(南河港), 안하이항(安海港)이 있습니다. 그 범위는 대략 청궁로(成功路) 이남과 신메이가(新美街) 서쪽, 남쪽으로는 중정로(中正路) 부근까지입니다. 현재 모습으로 볼 때는 당시 하천 항구였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며 수이셴궁(水仙宮), 카이지우먀오(開基武廟), 베이스가(北勢街), 풍신묘(風神廟)의 위치로만 대략적인 항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천 항구는 번영부터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100여년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부성 상업 중심지의 기초를 굳건히 다졌습니다.

공자묘 문화단지(孔廟文化園區)

삼백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전대수학(全台首學. 전국 최고의 학교)’ 공자묘는 타이난이 문화의 고도(古都)라 불리는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난먼로(南門路)에 길게 이어진 붉은 벽은 나뭇가지 끝을 통과하는 햇빛 아래 성스러움을 보여주며 타이난 고도의 독특한 정취 또한 보여줍니다. 유구한 역사의 공자묘를 중심으로 옛 거리들을 연결하고 근처 주요 고적인 다난먼(大南門), 푸중가(府中街), 연평군왕사(延平郡王祠) 등을 연결해 거리를 누비며 고도의 분위기를 맘껏 느낄 수 있는 문화 단지로 조성했습니다.

옌핑쥔왕츠 (延平郡王祠. 연평군왕사)

카이산로(開山路)와 푸첸로(府前路) 교차로에는 말 위에 올라탄 연평군왕 석상이 위풍당당하게 전방을 바라보며 마치 타이난의 수호신처럼 모든 이의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옌핑쥔왕츠는 붉은색을 주제로 하고 일본식 정취를 융합한 푸저우(福州)식 건축물입니다. 사당 안 네개의 문 앞에는 8명의 수문신이 그려져 있는데, 자세히 보면 푸른 눈에 피부가 흰 외국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정성공(鄭成功)이 네덜란드인들을 몰아낸 것을 기리기 위한 것입니다. 또한 서양인이 명나라 관복을 입고 계속 사당 문 앞을 지키고 있는 모습은 흥미로운 광경이 되었습니다. 옆에 있는 정성공 문물관은 진귀한 고문물과 역사 자료를 많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카이산 신사(開山神社) 시기의 일본식 가마 등이 있습니다. 1662년 정성공을 기념하던 작은 사당에서 시작해 카이산 왕먀오(開山王廟) 사당이 되었고, 일본 통치 시기의 카이산 신사가 지금에 이르러 현재의 옌핑쥔왕츠가 되었습니다. 각종 역사 기재와 문물 맥락으로부터 정성공이 대만 발전에 공헌한 숭고한 지위를 알 수 있습니다.

충칭사(重慶寺)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충칭사는 문학관 뒷쪽의 작은 골목 안에 위치하며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습니다. 충칭사의 역사는 177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1916년 현재 위치로 이전한 것입니다. 시대의 변천과 전쟁을 거치며 몇차례 훼손되었으나 보수 후에도 충칭사의 엄숙함과 장엄함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사원 안의 벽화와 수문신 등 모두 대가 판리수이(潘麗水)가 그린 것으로, 생동감있는 형합이장(哼哈二將)과 항룡복호 나한(降龍伏虎羅漢) 벽화를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인기가 있는 신은 사원 내부의 월하 노인(月老)입니다. 월하 노인 앞에는 식초 항아리(醋矸)가 하나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반려자와 사이가 좋지 않을 때 식초 항아리를 저으며 진심으로 월하 노인과 보살에 기도하면 변한 감정을 돌이킬 수 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