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시 구

마쭈러우 톈허우궁(媽祖樓天后宮)

1752년경 건립된 마쭈러우가 현재 위치한 장소는 원래 강 근처에 선원들이 휴식하던 장소였습니다.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선현들이 중국 대륙에서 이주해 올 때 메이저우(湄洲)에서 마쭈 향불을 이곳으로 가지고 와 향불을 휴게소의 다락방에 안치했고, 후에 이 곳을 떠날 때 향불을 남겨두었습니다. 그후 우탸오강(五條港)을 왕래하는 선박들이 야간에 향불이 반짝이며 선박들의 항해를 평안하게 인도하는 것을 보고, 이를 마쭈신이 나타난 것이라 여겨 사당을 건립해 향불을 안치했으며 ‘마쭈러우’라 이름지었다고 합니다.
영화 총포사(總舖師. 요리대전)의 주요 장면을 근처에서 촬영한 관계로 마쭈러우 톈허우궁은 최근 여행객들에게 가장 주목받는 사당이 되었습니다. 이에 원래 조용했던 사당 앞 광장이 떠들썩해졌고 지금까지도 많은 영화 팬들이 이곳을 찾아 순례를 합니다.

구 하야시 백화점(原林百貨)

2013년 6월 30일은 타이난의 오래된 건물 중 가장 유명한 하야시 백화점이 보수를 마치고 관람을 개방한 날입니다. 당일 오전 7시부터 오후까지 줄을 선 인파가 끊이지 않았는데, 이 줄은 모두 일본 통치 시기인 1932년 오픈한 ‘고잔라우아(五棧樓仔. 5층건물)’에 들어가기 위 한 것이었습니다. 과거에 이 곳은 매우 번화했던 구역이었으나 일본 통치 시기가 지나가면서 경영인도 일본으로 돌아가고 이에 하야시 백화점 또한 적막해지며 사람들에게 잊혀졌습니다. 2014년 하야시 백화점은 다시 백화점으로서 부성(府城)에 등장하게 되었으며 주로 하야시 백화점만의 한정 수량 상품을 전시 판매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놓쳐서는 안 될 관광 포인트가 몇 개 있습니다. 첫번째는 엘리베이터(流籠) 타기입니다. 엘리베이터가 이동하는 층 표기가 시계 바늘같이 바늘이 도는 방식으로 되어있습니다. 지금은 아마 하야시 백화점에만 남아있는 것으로 보이며 옛날 그대로의 느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두번째는 옥상에 있는 도리이(鳥居, 신사 입구의 문) 신사입니다. 이 것 역시 전국에서 이 곳에만 있으니 꼭 올라가 구경해 보시기 바랍니다. 세번째는 미군 폭격으로 생긴 탄알구멍입니다.

다징터우(大井頭)

다징터우는 교통량이 많은 민취안로(民權路) 도로 위에 있습니다. 무쇠 뚜껑으로 우물 입구를 덮어두었으며 길가에는 고적 설명비를 세워놓았습니다.
다징터우의 역사와 그 중요성은 15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야하지만 우물을 굴착한 연도는 알 수 없습니다. 15세기에 대만에 온 선박이 타이장(台江) 내해에 진입한 후 이 근처에 상륙했습니다. 이곳이 당시 항구에서 가장 가까운 육지의 민물 우물이었으며 수원이 풍부하고 달아서 왕래하는 선박들이 취수해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후에는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 역시 이 우물물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만 개발사의 첫번째 수원지라 할 수 있는 곳으로 그 중요성을 알 수 있으니 지나가실 때 주의깊게 내려다 보시기 바랍니다.

탕더장 기념공원(湯德章紀念公園)

일본 통치 시기에는 유럽식 건축 스타일의 영향을 받아 도시 계획 및 도로 개발에 환(環)형 설계를 많이 적용했습니다. 탕더장 기념공원 역시 환형으로 설계되었으며, 당시 타이난 시정 센터(市政中心), 타이난 주청(州廳), 합동청사 등 중요 정부 건물들이 모두 이곳에 모여있었습니다. 일본 통치 시기에는 중앙에 일본 총독인 고다마 겐타로의 동상이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고다마 공원’이라 불렀습니다. 2차 세계 대전 후에는 국부 손중산(孫中山) 선생의 동상으로 바뀌었고 이름 또한 ‘민생녹원(民生綠園)’으로 변경되었습니다. 1998년 228 사건 때 이곳에서 죽음을 당한 탕더장(湯德章) 변호사를 기리기 위해 탕더장 기념공원으로 바뀌었으며, 현재 공원 내부에는 탕더장 변호사 기념 반신(半身) 동상이 있습니다.
공원 주변은 타이난시에서 고적들이 가장 밀집되어 있는 구역이자 타이난 관광의 정수가 모인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많은 여행객들이 탕더장 공원에서 대만 문학관의 초대형 트리와 주변 조명 장식을 구경합니다. 이곳은 풍부한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타이난 사람들의 공통적인 추억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구 타이난 신사 사무소 및 외원(原臺南神社事務所及外苑)

구 타이난 신사 사무소 및 외원(바깥 정원)과 무덕전(武德殿)은 약 1936년경 동일한 시기에 건립되어 재질과 모양 모두 무덕전과 비슷합니다. 어떤 이는 신사의 사무소라고 하고 어떤 이는 아마 당시 신사의 휴게소였을 것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용도였든 간에 일본 통치 시기의 아름다운 건축물인 것은 사실입니다.
비록 타이난 신사는 이미 없어졌지만 다행히 신사 외원은 남아있어 역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 오시면 신사 외원의 신교(神橋) 또한 꼭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이들 모두 일본 통치 시기 타이난 신앙 문화의 중요한 건축물입니다.

구 타이난 기상 관측소(중앙기상국 대만 남구 기상센터)[原台南測候所(中央氣象局臺灣南區氣象中心)]

구 타이난 기상 관측소는 타이난 사람들의 마음 속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기상 관측소는 당시 타이난시 중심의 가장 높은 곳인 해발 14m의 주링(鷲嶺)에 설치되었는데 외관 때문에 타이난 지역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후추통'이라 부릅니다. 또한 특수한 18등분 방사형 지붕으로 인해 '18각루'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구 타이난 기상 관측소는 기상국 남구 기상센터 앞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두 동의 현대적인 건물 사이에서 매우 눈에 띕니다. 자세히 관찰해보면 건축물은 3개의 동심원이 겹쳐진 형태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장 안쪽 원은 흰색의 원형탑으로 내부에는 각종 기상 관측 설비들이 배치되어 있으며 중간 원은 복도이고, 가장 바깥쪽 원은 사무실입니다. 이러한 특수한 외관은 여행객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3~4월에 장밋빛 나팔나무에 꽃이 만개할때면 기상 박물관에 많은 인파가 몰려듭니다. 분홍색 꽃과 기상 박물관, 그리고 맞은편 타이핑징 교회(太平境教會)가 어우러져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밤이 되면 장밋빛 나팔나무가 밤의 벚꽃처럼 화려하게 빛나는데, 이는 놓쳐서는 안 될 명장면입니다.

쓰뎬우먀오(祀典武廟)

부드러운 굴곡을 이루는 '겹처마 헐산(重簷歇山)'식 지붕에 전면이 붉은색인 벽은 많은 사람들이 쓰뎬우먀오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입니다. 이곳은 타이난의 대표적 명소 중 하나로 약 1665년 건립된 대만 최초의 관제묘(關帝廟, 관우사당)입니다. 또한 당시 정부가 지은 사당 중 하나로, 사당 내부에는 위엄있는 관성제군(關聖帝君)을 모시고 있어 대관제묘(大關帝廟)라고도 부릅니다.
이곳에 오셔서 반드시 봐야할 것은 1791년 도대(道臺, 정부 관직명) 양팅리(楊廷理)가 적은 '대장부(大丈夫)' 편액으로, 간단한 세 글자로 사람들 마음 속의 관공의 이미지를 완벽히 형용해냈습니다.
향불이 피어오르는 쓰뎬우먀오에는 인기있는 신이 몇 분 더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세간의 인연을 담당하는 월하노인(月老)입니다. 쓰뎬우먀오의 월하노인은 타이난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월하노인이라 할 수 있는데, 인연을 비는 것 외에도 월로전(月老殿) 내에 우편함을 두어 인연을 비는 빠른 우편을 월하노인에게 보낼 수 있습니다. 매우 영험하다는 말이 있어서 외국인들도 진심으로 참배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우페이먀오(五妃廟)

역사에 기재된 바에 따르면 청나라 스랑(施琅)이 대만을 공격해 올 때 명나라 영정왕 주수구이(寧靖王朱術桂)는 순국을 결심했으며, 그의 5명의 비(妃)도 남편을 따라 생사를 함께할 것을 결심하고 왕부에서 잇달아 목을 매달아 자결했습니다. 주수구이는 직접 5명의 비들을 납관 및 발인한 뒤 자신 또한 자결하여 순국했습니다.
우페이먀오 사당은 1683년 건립되었습니다. 외관은 ‘단진(單進) 2호룡(護龍, 2개의 곁채)’ 형태의 고건축이며 옆에는 작은 사당이 하나 있는데 이는 ‘의령군묘(義靈君墓)’로서 당시 함께 순국한 두명의 시종에게 제를 지내는 곳입니다. 현재 우페이먀오는 부성 역사 여행의 중요 명소가 되었습니다. 내부 환경은 그윽하고 녹음이 가득하며, 근처에는 많은 가게들이 맛있는 음식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건너편에는 시끌벅적한 타이난 야구장도 있어 많은 사람들이 주말에 나들이를 오는 좋은 장소입니다.

쓰뎬 다톈허우궁(명나라 영정왕 관저)[祀典大天后宮(明寧靖王府邸]

일명 다마쭈궁(大媽祖宮)이라 불리며 원래는 영정왕 주수구이(朱術桂)의 관저였습니다. 1683년 스랑(施琅)이 군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 대만으로 와 정커솽(鄭克塽)을 대파시켰습니다. 그 후 민심 회복을 위해 특별히 청나라 조정에 요청해 영정왕 관저를 톈페이궁(天妃宮)으로 개조하고 마쭈 신을 모셨습니다. 후에 톈허우로 봉하여 ‘다톈허우궁(大天后宮)’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으며 대만에서 첫번째로 정부가 지은 마쭈 사당이 되었습니다. 사당 내에 들어서면 대전 내에 모시고 있는 거대한 금면(金面) 마쭈상이 보이고 그 옆에는 위풍 당당하고 생동감 있는 천리안과 먼 곳의 소리도 들을 수 있는 순풍이(順風耳)가 있습니다. 후전에는 월하노인(月老公公)을 모시고 있어 많은 싱글 남녀들이 이 곳에 와 참배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월하노인께 빌고 연분(緣粉, 분홍색 가루로 남녀의 인연을 뜻하는 연분緣分과 발음이 비슷함)과 붉은 실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인연을 불러온다고 합니다.

츠칸러우(赤嵌樓)

츠칸러우는 타이난 중시(中西)구 내 가장 중요한 고적 건축물이라 할 수 있으며 안핑(安平)의 안핑 요새와 함께 타이난의 양대 유명 고적으로 손꼽힙니다. 1652년 네덜란드인이 이곳에 프로방시아 성을 지으면서 타이난 행정과 상업 중심의 위치를 확립했습니다. 300년이 넘는 세월동안 몇번의 보수와 개건을 거치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내부에는 해신 사당(海神廟), 문창각(文昌閣)과 펑후 서원(蓬壺書院)이 있고 주변 잔디밭에는 정성공이 항복을 수락하는 동상이 세워져 있어 방문하는 국내외 여행객들로 하여금 당시 정성공의 늠름한 자태를 상상해보게 합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대남문 성 주위에서 옮겨온 9개의 비석으로 거북이처럼 생긴 비희(贔屭)가 비석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비희는 용이 낳은 아홉 자식 중 하나로 천성적으로 무거운 짐을 지는 것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또한 비희로 인해 츠칸러우에는 더 많은 전설이 생겨나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밤이되면 츠칸러우 주변에 노란 조명이 켜지면서 옛 느낌이 가득한 건물에 운치를 더해줍니다.